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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보. 정지희 부부의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
 이준호  | 2007·12·12 18:01 | HIT : 2,342 | VOTE : 254
안나프르나 서키트를 다녀와서,

                                                                                  정   지희



히말라야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눈의 집 또는 통합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중에서 안나프르나는 네팔 중북부에 위치한 마르상디강과 갈리간다기강 유역 사이에 네 개의 큰 봉우리와 능선으로 이뤄진 산군이다.

남편은 퇴직과 동시에, 그가 늘 꿈꿔왔던 마음속 하얀 설산의 히말라야, 이 트래킹을 위해 정보 수집과 여러 가지 준비를 하면서, 그는 점점 욕심을 내어 처음 목표였던 안나프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프르나 서키트로 바꿨다.  우선 고도가 4,100m에서 5,500m으로 높아지고, 일정도 10일에서 15일 이상으로 길어져, 가기 전부터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늘에서 내다본 히말라야 산군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큰 은빛 설산의 연봉들 이었다. 내가 밟아야할 안나프르나 산군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가보기도 전에,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카투만두 상공에서 바라보니 모든 산에는 어김없이 정겨운 다랑이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공항에 내리니 대한항공의 카투만두 첫 취항기념으로, 잊지 말고 히말라야로 다시 돌아오라는 의미의 티아레 꽃목걸이와 트래킹 성공을 기원하는 실크 머플러를 목에다 걸어주는 네팔인 들의 미소가 다소 나의 마음을 녹여 주었다.  

네팔에서의 첫 날밤에는 남편과 성공을 다짐하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설레임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트래킹 첫째 날 베시사하르로 가는 중 멀리보이는 마나슬루, 히말추리등 설산을 보며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베시사하르는 평화로운 모습이 우리의 농촌과 비슷했다.  조그만    픽업  트럭에  20여 명이 위험스럽게 타고  꼬불 꼬불 산길을 휘돌아가니 식은땀이 절로 났다.



쿠디에서 내려 마르상디강을 가로지르는 첫 현수교를 만나, 드디어 TV에서만 보던 출렁다리를 건너니 트래킹이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계곡 사이로 좁은 길을 따라 오르내리는 나귀 떼와 나귀 방울 소리를 들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데 현수교에서나 좁은 길에서는 나귀 떼가 모두 지나갈 때까지 사람들은 20분, 30분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이곳에서도 트래픽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삶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네팔인 들은 만나는 이 마다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며 “나마스떼”(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를 한다)하며 인사를 한다. 언제나 하얀 설산만 보고 살아선지 그들의 선한 눈매와 순박한 미소는 나그네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우리도 전염되었는지 나그네끼리도 눈이 마주치면 “나마스떼”하여 지나친다.

트래킹 도중 산과 들에 핀 예쁜 야생화, 롯지 뜰 안에 잘 가꾼 화초들, 크리스마스시즌에 화분에서만 본, 키 커다란 흰색과 붉은색의 포인세티아나무가 반기고, 산골 마을에 사는 네팔인 들의 정겹고도 분주한 일상이 지나는 곳곳에 있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히말라야의 아침은 미명에 당나귀의 방울 소리로 시작이 되고, 오후에는 나그네나 나귀나 하루의 힘든 여정을 접고 일찌감치 휴식을 취한다.










수많은, 험난한 힘든 길들 위로 나그네, 마을 사람, 나귀 떼 모두 자신의 발로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니, 내게 익숙했던 시간의 속도감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 무거운 등짐을 지고 맨발 혹은 헤진 슬리퍼를 신고 가는 마을 사람을 보면서, 솥뚜껑 같은 내 등산화를 바라보는 순간, 그들에 비하여 너무 사치스럽고 탐욕스럽게 까지 느껴졌다.







내 발 밑의 흙과 먼지는, 길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과 심지어 짐승의 배설물이 영겁의 세월이 지나면서 분해되어 쌓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럽다는 느낌보다 시간이 응축된 자연의 일부분으로 느껴져, 나귀의 똥으로 범벅이 된 흙길을 피하기보다는 밟고 다녀도 자연스러워졌다. 심지어 하얀 머리카락의 헤진 옷에 수염이 긴 노인네가 맨발로 망테하나 걸치고 지나가면 저 사람은 혹시 구도자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설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이어서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언덕위로 올라가는 길 어귀마다 힘겹게 지고 온 짐을 내려놓고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도록 저우따라라는 쉼터를 돌로 쌓아 놓아,  나그네들에게 배려를 하였다. 특히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티벳 불경이 쓰여 진 원통의 마니차가 일렬로 있어 지나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께 자신의 안전을 기원하며 돌리면서 지나간다. 우리도 소망과 앞으로의  여정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며 마니차를 열심히 돌렸다. 가이드도 독실한 신자인지 늘 경건하게 마니차를 돌리고, 매일 아침에는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나는 길가에 아마 높이가 수백 미터 쯤 되 보이는 거대한 폭포들이 산꼭대기에서부터 한줄기로, 흰 거품을 뿌리며 물보라가 떨어지고 있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어, 우리만 본다는 것이 아쉬워 사진에 담으려고 했으나, 한 장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그 외에도 주변에 수많은 신기하고 아름다운 경치가 많아 이에 홀려 넘어질 뻔 하여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나는 길에는 그런대로 많은 티 하우스와 롯지가 있어 트래커들이 휴식과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고, 자신의 능력에 맞춰 쉴 수 있도록 롯지가 곳곳에 있어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각 롯지 앞마당에는 금잔화, 나팔꽃, 사루비아, 제라륨등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꽃 들을 가꾸어 놓아  친근감이 있었고, 뒤뜰에는 텃밭이 있어 야채를 가꾸고 있었다. 나름 깨끗한 흰 면포를 씌운 나무 침대가 있어 산에서 하루 쉬기에는 족해보였지만 난방 시설이 없어 밤을 지내기에는  고생이 되었다. 점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안나프르나의 밤은 몹시 길고 추웠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오늘 밤은 어떻게 보내나 걱정을 하며 뜨거운 물병을 침낭 속 발 밑에 넣고, 시린 코끝도 어루만지며, 침낭을 여미며,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추위를 견디면서 하루 저녁에 석 잠을 잤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철이 지나 롯지마다 텅 비어 있어 우리에게 방을 고르는 특권이 주어져, 가이드는 전망 좋은 방을 추천하였으나, 우리는 창문의 틈새가 적고  양쪽에서 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가운데 방으로 화장실이 딸린 호화스러운(?) 방을 골라 들었다. 아마도 성수기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특권이었으리라. 마낭에서는 롯지의 창밖으로 침대에 누워서도 눈 앞의 안나프르나 세  봉우리와  강가푸르나와  저멀리 닐기리 사우스를보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의 트래킹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소증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남편은 계속 물을 먹게 하고, 티를 마시게 하면서, 다이아먹스 이뇨제를 먹게 하였다. 현지인들은 천천히 걸으라고 충고를 하고 갑자기 고도를 올리면 위험하므로 하루에 300m만 고도를 올리라고 한다. 고도를 올릴수록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저려  고소 초기증상인지  걱정을 했는데 낮에는 괜찮아서 안심을 했다.   3,540m인 마낭에서는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를 쉬면서 콤바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니 건너편 안나프르나쪽으로 호수가 있어, 오후엔 그곳으로 산책을 갔다. 하얀 얼음벽의 강가프르나와 그  빙하가 녹아서 생긴 코발트 빛의 호수, 그 곳에 산 그림자가 비춰져 더욱 아름다웠다 .  또 고소적응을 위해 머리를 보온해야 된다고 잠 잘 때에도 털모자를 쓰고 잤다. 4,000m부터는 마음을 다 잡으면서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통해 천천히 내쉬면서 "Baby walking"을 입 속으로 뇌이면서 걸었다. 4000m 이상에서는 마을도 없고, 나귀 떼도 없고 스쳐지나가는 트렉커 사이에서도 힘겨운지 “나마스테”인사 조차도 없었다. 단지 야크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식사는 약간의 밑반찬과 라면, 햇반을 준비해 갔지만, 주로 롯지 식당에서 해결하였다. 초기에는 네팔리 대표 음식인 짜파티와 달밧을 시도했으나 곧 물려, 만두인 모모와 삶은 감자, 계란후라이, 치킨카레 등을 먹었다. 약간 더럽고 지저분했지만 맛은 괜찮았다. 전 일정 중에 쏘롱라 고개를 넘은 후  따또빠니와 다나에서의 식사는 매우 훌륭하였다.

마낭부터는 안나프르나와 강가프르나를 바로 옆으로 지나니 금방이라도 정상에 다다를 듯 했다.    특히 일정 중 최고의 View Point인 군상(4,000m)에서 내려다보이는 안나프르나산의 연봉들은 장엄하였고 너무 아름다워서 그것을 영원히 기억에 남기고 싶어 남편과 같이 두 팔을 벌려 산을 껴안아 사진 속에 담았다.

마지막 난코스인 쏘롱라(5,416m) 바로 전에 있는 쏘롱패디(4,420m) 롯지에서는 식당에 전기난로까지 구비되어 있어 이번 여정 중 가장 아늑한 저녁이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일찍 쏘롱라 고개를 향하려니 모두 긴장되고 흥분되어선지,  그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세계 각국의 트렉커들이 모두 모여서 저녁 늦게까지 시끌벅적 하였다. 서로 내일의 성공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눈 후 헤어져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다음날의 고소증이 걱정되어 마음을 졸였다. 확실히 서양인들이 커다란 배낭을 지고 다니는걸 보면, 그들이 체력적으로 우세한 것을 느낀다. 추위에도 강한 것 같았고   진취적인 성품 때문인지 트렉킹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노부부나 젊은이들도 모두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만큼 고소증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나의 소심함이 조금 부끄러웠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조심스럽게 컨디션을 챙기니 숙면을 취해선지 고소증세가 아직 없었다.  남편은 잠을 편히 자지 못한 것 같았지만 컨디션은 괜찮았다. 남편이 나를 걱정해 전날 예약해둔 말을 취소하고, 걸어서 남편과 같이 빨리 쏘롱라만 넘으면 고소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출발 후 1시간 만에 4,700m의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발이 너무 시려워 털양말을 껴 신고 포터들에게도 여분의 장갑을 나눠 주었다. 3시간 후에 고소증이 나타난다니 쏘롱라까지 3시간만 가면 고소증 공포에서 해방되겠다 싶어 더욱 분발해 천천히 걸으며 심호흡 하고 그저 걷기만 할 뿐이었다. 그저 발자국 소리와 거친 숨소리, 성공해야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이었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묵묵히 숨을 고르며 가고 있는데 가이드가 바로 손가락으로 저 곳이라고 가리킨 곳을 보니 룽다가 펄럭이는 쏘롱라였다. 숨쉬기와 발걸음의 박자를 맞춰야만 올라갈 수 있다는 곳에 이미 도착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 드디어 해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축하하며 얼싸안았다. 남편 눈에는 눈물이 비친다. 가이드, 포터에게 애썼다며 치하하고 모두 같이 어깨동무를 해서 사진에 담았다. 고소증에 시달린 나이어린 포터도 애써 웃음 지으며 선글라스를 끼고 브이자를 내보이며 폼을 잡는다. 포터들은 티하우스에서 블랙티를 마시고는 냅다 쏜살같이 아래로 내달린다. 이상하게 긴장해서 그런지 올라갈 때는 멀쩡했는데 내려갈 때는 힘이 없고 축 쳐져 더 힘이 든다. 머리까지 아파온다. 고소증상이냐고 남편한테 물으니 내려가는 길이라 괜찮단다.

급한 경사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저 멀리 보이는 넓게 펼쳐진 암갈색의 봉우리들, 어쩌면 내가 이제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풍경이 나타났다. 무스탕이었다. 나무 한그루 없는 무채색의 황량한 구릉이 끝없이 이어져 괴기스럽기조차 했다. 이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신비할 따름이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몬순시기엔 초록색으로 변한단다. 이 계곡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이어서 오후에는 강한 바람이 몰아치며 밤에는 잠잠해진다. 우리는 묵티나트에서 마르파까지 Horse Tracking을 하였다. 계곡과 벌판을 가로질러 올라오는 모래바람은 너무 심해서 썬글라스가 아니면 눈 뜨기조차 힘들고 바라크라바와 버프로 얼굴을 가려도 입안에 먼지가 고여 말을 타고 가는데도 쉽지가 않았다. 다른 트렠커들은 바람과 맞서며 걸어서 아주 힘든 코스였을 것이다. 다들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였다.  6시간정도 타서 엉덩이는 아팠지만 아주 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오른쪽으로 다울라기산군, 왼쪽으로 안나프루나를 감상하면서 갈리간다기의 넓은 강바닥을 가로지르며 협곡을 지나며 아름다운 숲속을 내려왔다.



       <일정중 만난 각국의 트래커들, 따또빠니,히말라야산장에서>          

    

대부분의 트렉커는 따또빠니에서 베니로 내려 갔으나 우리는 다시 1,700m의 고도를 올라 치느라 꼬박 9시간을 걸어 안나프르나 서키트의 마지막 난코스인 고라빠니에 도착했다. 다음날 우리는 몹시 피곤했지만 푼힐의 일출을 보기위해 캄캄한 새벽길을 나서니 플래시 불빛이 줄지어 앞서가고 있었다. 아침 여명으로 희끄스름하게 설산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보니 이곳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전망대가 있었다. 그곳에 올라가니 세계에서 모인 많은 트렉커들이 긴장한 기색으로 엄숙한 모습을 하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나 또한 한기 때문인지 떨리기까지 했다. 눈앞에 다울라기, 안나푸르나 사우스, 마차푸차레에 황금빛 찬란한 빛이 서서히  펼쳐졌다. 장엄한 모습은 외경심 그 자체였다.

푼힐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은 아까의 침묵과는 달리 활기차며 소란스럽기까지 하였다.

우리의 여정이 오늘로써 대장정의 막이 내린다 생각하니 지난 14일 동안의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걸어서 안나푸루나 산군을 한바퀴 300여km 돌았다 생각하니 몹시 힘들었지만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남편이 고마웠다. 매일 날씨도 쾌청해 우리의 여정을 가볍게 해 준 행운도 따랐고, 눈부신 하늘, 산, 별, 바람, 구름, 나무, 물 등 자연과 더불어 동행하며 남편과 온전히 보낸 것도 내 생애에서 갖기 힘든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걷기 힘들고 고소증의 두려움에 떨며 포기조차도 어려운 절박함에 괴로워서 내 체력에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남편을 원망하고 툴툴거리면서 ‘다시는 히말라야 땅을  밟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끊임없이 ‘무시라’를 입에 달고 다녔던 나였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아스라한 꿈결 속에서 아름답고 장엄한 히말라야를 본 듯 머릿속에서 자꾸 그려지니 히말라야 병이라도 도진 것일까?

네팔인 들이 자연 속에서 힘든 노동을 감내하며 운명처럼 사는 그들의 해맑은 표정이 너무나 행복하게 보였다.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감사함이 부족한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 사고 없이 신의 길을 따라 남편과 함께 걷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다.  

이 여정에 우리에게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65산우회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무 사고 없이 성실하게 잘 안내해 준 가이드 펀자와  고생한 포터인 구릉과 라나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자세한 일정및 트래킹 여정에 관한 이야기는 http://blog.naver.com/inbohwang을 보시길 바랍니다.



                                   <문명 세계에  도착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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