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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기(2012.6)
 김두경  | 2012·06·29 11:54 | HIT : 11,584 | VOTE : 134

 

지리산 종주기

 

 5월 27일 일요일에 오랜만에 65산을 따라나섰다.  작년 하반기에 북한산 둘레길은 다녔어도, 산행은 올 2월 태백산 산행이후 처음이다. 많은 친구들이 나왔다. 요즈음은 많이 안 나온다고 한다.

산행 중에 목공 전문가인 종현에게 다반상 수리에 대해 물어봤더니, 지리산 가지 않겠냐고 한다. 가보고는 싶었지만 자신이 없어 그냥 얼버무렸다. 5월 29일에 종현이를 만나 다반상 수리에 대해 도움을 받고났더니, 도움을 주는 대신 수길, 승근이와 지리산 종주를 하잔다. 코가 꿰는 순간이다.

지리산에서 낙오하면 곤란할 것 같아, 6월 10일 65산을 한 번 더 갔다.

 

사전 모의

그 다음날(11일) 교대역앞 남원 추어탕에서 4명이 만나 지리산 종주 계획을 짰다. 연락은 카카오톡으로 하기 위해 채팅그룹을 즉석에서 만들었다. 물론 시험교신도 했다. 나중에 보니, 교신 내용을 다 같이 볼 수 있어 굉장히 편리했다.

승근이가 갖고 갈 품목을 정하고 계획을 짰다. 대장에 하수길, 총무 유승근, 고문 정종현, 방관자에 김두경을 임명했다.

15일 전에 대피소를 예약해야 한다고 해서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멤버가입을 했다. 15일전 오전10시에 22일 벽소령과 연하천 대피소를 어렵지 않게 예약하고, 23일 토요일 장터목을 예약하기 위해 10시 정각에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화면이 하얗게 되고 보이질 않는다. 잘못 되었나 해서 다시 나왔다 들어가니 상황이 똑같다. 틀렸거니 하고 기다리니 예약 가능하다고 창이 떠서 재빨리 4명을 예약을 했다. 친구들과 교신을 해 보니 나만 예약 됐다고 한다. 내가 방관자에서 기여자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리산 산행을 위한 체력 보강을 위해 자전거(하루 25km)를 3번 타고, 나머지 날에는 헬스를 했다.

 승근이가 벽소령과 장터목에서 자기로 최종 결정하고, 출발은 무궁화호 기차로 21일 목요일 밤 10시 45분에 떠나기로 했다. 귀경은 백무동에서 오후 4시 버스를 타기로 하고, 기차는 승근이가, 버스는 수길이가 예약을 했다. 연하천은 취소했다.

각자 가져 갈 것을 분담하고, 공동물품은 수길이가 사기로 했다. 떠나는 날 각자 짐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교신해보니 약 12kg 전후로 싸면 될 것 같다.

 

용산역 출발

나는 용산역을 향해 9시 40분 쯤 집을 나서 신도림에서 1호선을 탔다. 대방역 근처에서 종현 도착 메시지가 떴다. 9시 42분 빨리도 왔네!!  

나는 55분 도착, 승근이도 10시 10분에 도착했다. 21분에는 수길이가 수원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수길이는 분당에 사는 관계로 수원에서 타기로 했다. 아직 기차가 용산역을 떠날 생각도 안하는데 되게 들 빨리 왔다. 두고 갈까봐 걱정이 되었나?

종현이 짐이 매우 무거워 보인다. 생수를 5개나 넣고 사과와 귤도 많이 넣었다고 한다. 결국 물을 너무 많이 가져가 생수 한통은 안마시고 왔단다.

여수행 무궁화 열차는 정시에 1분 늦게 용산역을 떠났다. 기차가 영등포역을 거쳐 내가 사는 신도림역을 지날 쯤에 집 근처를 지난다고 마눌님께 문자를 넣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차단하였다. 삼성폰과는 달리 내가 갖고 있는 아이폰은 여분의 밧데리가 없다.

용산역에서는 많지 않던 승객이 영등포역에서는 많이 타 입석 승객이 생겼다. 수길이 자리는 승근이가 수원까지는 앉을 수 있다고 입석 승객에게 인심을 쓴다. 등급이 낮은 무궁화 열차지만 에어콘이 잘 나와 상당히 쾌적했다. 우리랑 같이 탄 승객 중 일부는 지리산 산행을 하는 것 같다.

수원역에 도착하니 입석 승객 대부분이 내렸다. 수길이도 탔다. 나머지 승객의 상당부분은 여수 엑스포를 가는 것 같다. 나는 목도 마르고 해서 용산역에서부터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안해 포기했었는데, 기차 속에도 간식을 파는 판매원이 없어 물거품이 됐다.

기차는 가면서 여러 군데를 정차하며, 드디어 익산역을 거쳐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익산을 지날 때 보니 유흥가의 네온사인이 화려했다. 다른 역과는 달리 5분 전부터 짐을 잘 챙겨 내리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아마도 지리산 등반객에 대한 배려 같다.

우리는 자다가 구례구역을 지나칠 까봐 걱정 하였으나, 우리자리가 안내 마이크 밑이라 잠만 설쳤다.

 

구례구역

새벽 3시 2분에 정확하게 구례구역에 도착하여 나가보니, 승객 호객꾼들이 많이 있다. 택시와 성삼재가는 버스도 대기하고 있었다. 천천히 볼일을 보고나니 몇몇 사람만 남고, 다들 택시나 버스를 타고 떠나 한산해 졌다.

가게가 문을 열고 있어 생수를 사고, 아침을 성삼재에서 먹으려고 물어 보니 9시에나 식당이 연다고 한다. 그래서 앞에 있는 식당에서 재첩해장국을 한 그릇씩 해 치웠다. 새벽이기는 하나 참새들이 방앗간을 지나칠 리 없다. 막걸리 한통을 시켜 나누어 먹었다.

식당 주인에게 매일 이렇게 일찍 문을 여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가면 다시 문을 닫는다고 한다. 택시를 불러 달리고 하고 밖에 나와 보니, 좀 전에 생수를 샀던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다. 택시는 곧 왔다.

3시 50분에 배낭을 싣고 떠나면서, 왜 역이름이 구례구역이냐고 물었다. 역은 행정구역상 구례읍이 아니라서 구례입구라는 뜻으로 입구자를 쓴다고 한다.

점심에 먹을 김밥 파는 곳이 있냐고 물으니 시내에 있단다. 택시로 즉석 김밥 집에 들렀는데 먼저 온 손님이 있어 시간이 걸린다. 할 수 없이 택시 기사 제안대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사서 떠났다.

성삼재로 가는 길은 매우 꼬불꼬불 했다. 하도 택시가 달려 몸이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지리산표 총알택시다.

 

성삼재(1100m)

얼마 안지나 성삼재에 도착했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김밥을 나눈 후 마지막 볼일을 보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시간은 오전 4시 40분, 아직 어두컴컴하다.

올라가는 길은 폭 약 4m 가량의 탄탄대로다. 승근이가 계단길이 보이자 치고 올라갈래 아니면 가던 길로 계속 갈래하니, 다들 배낭이 무거워 돌아가잔다.

가는 길에 화엄사쪽 전망대가 있었으나, 연무가 끼어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스틱을 잡은 팔에 힘이 없다. 총알택시를 타고 올 때 좌우로 안 밀리려고 용을 써서 그런가? 

 

노고단 고개(1440m)

약 40분을 올라가니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먼저 떠난 등산객들이 많이 모여 라면 등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등산객에 부탁하여 첫 증명사진을 찍었다.

대피소에서 한 10분 쯤 오르니 노고단이 나왔다. 원 노고단(1507m)은 9시에나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멀리서만 봤다.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란다. 원 노고단은 지리산 3봉 중 하나다.

해가 좀 전에 떴는지 천왕봉쪽 능선위에 걸려있다. 우리가 쉬고 있는 곳에는 돌탑이 우뚝 서 있었다. 이곳이 지리산 종주의 시발점이다. 무사히 완주를 해야 할 텐데.. 좀 쉬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 되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발걸음도 가볍게(사진)

수길이가 힘겹게 노고단 고개로 올라오는 모습(사진)

노고단 고개에서의 휴식, 멀리 원 노고단이 보인다.(사진)

노고단 고개에서의 일출(사진)

원 노고단 모습(사진)

원 노고단을 배경으로 노고단 고개 돌탑을 배경으로(사진)

 

노고단 고개 출발

능선 길은 오솔길처럼 되어 있었는데, 나무들과 산죽으로 둘러 쌓여있어 햇빛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다들 공기 좋고 기분이 좋다고 한 마디씩한다. 지나가는 길에 꽃이 한두송이 붙어 있는 철쭉도 있고 라일락 비슷한 꽃도 있다. 가끔 산목련도 보인다.

나는 지리산 종주는 뙤약볕 속에서 몇 시간씩 간다고 해서 겁을 많이 먹었는데, 출발은 산뜻했다. 등반길은 며칠 전에 비가 좀 와서 땅이 다소 젖어 있었다. 길이 외길이라 길 잃을 염려는 없단다.

한참을 가다 쉬면서 종현이가 가져 온 사과를 먹었다. 종현이 짐을 줄여주기 위한 나머지 사람들의 배려다.

 

임걸령 샘물(1330m)

한 시간 쯤 걸어 임걸령 샘물에 도착했다. 수량이 풍부하고, 지리산에서 제일 물맛이 좋다는 명성이 명불허전이다. 물 한 모금씩 먹고 물을 채웠다.

샘물을 받는 수길(사진)

한참 걷다가 종현이가  배낭이 무거운데 내가 왜 물을 또 받았지 하며 한탄한다. 물을 버리라고 했으나, 물 욕심은 상당했다. 지난번 지리산 종주때 물이 없어서 고생했다고 한다. 

다행히 햇빛이 쨍쨍 내리 쬐지 않아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가끔 시야가 트인 곳에서도 별로 보이는 경치가 없었다. 중간에 쉬다 수길이가 가져온 쵸코렛과 와인쿨러를 마셨다.

키가 크고 몸매가 예쁜 여인 일행을 만났다. 승근이가 그냥 지나칠 소냐? 말을 걸으니, 오늘 노고단에서 우리처럼 올라왔고, 가다가 뱀사골 정도에서 내려간다고 한다.

 

노루목(1498m)

승근이가 오늘 산행을 예정보다 빨리 시작했으니, 반야봉을 들러 가잔다. 두 시간쯤 걸려 반야봉으로 오르는 노루목 갈림길에 도착하여 쉬면서 귤을 먹었다. 종현이에 대한 배려다.

종현이는 배낭이 무거워 반야봉을 스킵하자고 했는데, 수길이가 기왕 왔는데 올라가자고 해서 다 같이 올라가기로 했다. 반야봉은 지리산 제2봉으로 1732m의 높은 봉우리다.

내가 종현이 배낭 속의 물을 숲 속에 감춰 놓고 가자고 제안을 했으나,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다른 등산객은 배낭을 놓고 올라가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결국 메고 올라갔다. 갈림길에서 반야봉 까지는 230m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반야봉(1732m)

날씨도 더운데다 등산길의 경사가 급해 더 힘들었다. 정말이지 그냥 지나칠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부 구간은 네발로 올라가야 할 정도로 가팔랐다. 다행히 아주 급경사에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지리산 종주객 들이 힘이 들어 반야봉을 스킵하는 것 같다.

급경사를 만나 한숨(사진) 

왜 이리 가팔라 올라가기 싫다.(사진)

그래도 계단이 있네 정말 가파르다(사진)

괜히 배낭 가져 왔네 마저 올라가야 하는데(사진)

 빨리와 힘내!!(사진)

그래도 우리는 슬픈 전설(아래 참고 자료 참조)이 서려있는 지리산의 제2봉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무사히 올랐다. 힘들게 올라가니 반야봉 비석이 나왔다. 1700 고지가 넘는 봉우리에 올라보니 등반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오겠나...

봉우리에는 몇 명이 와 있었다. 재빨리 부탁하여 증명사진을 찍고, 수길이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시간은 이제 겨우 8시 50분이다. 집에 안부 문자를 보냈다. 수길이가 올라와 다시 넷이서 증명사진 한방 찍었다.

내가 등반 한 중에 한라산 다음에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물론 모레 오를 천왕봉이 1915m로 더 높지만... 연무가 안 끼었으면 풍광이 좋을 텐데 참 아쉽다. 연무사이로 지리산 자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반야봉 정상에서(사진)

반야봉 표지석 뒷면, 뒷 배경은 두경 마님께 보고 중(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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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반야봉 [般若峰]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에 있는 반야봉은 높이에 관계없이 지리산의 제2봉(1732m)으로 불린다. 주위에 날라리봉, 토끼봉 등이 있다.

 남사면에서는 섬진강의 지류가 발원하며, 북사면에서는 산내천이 발원해 남강으로 흘러든다. 월귤·만병초 등의 고산식물이 자라며, 식물의 수직적 분포가 나타난다. 기반암은 화강편마암으로 급경사의 바위산을 이루어 산세가 비교적 험하다.

반야란 산스크리트의 prajna를 음역한 것으로 지혜를 뜻한다. 대승불교에서 반야란 반야경(般若經)에서 강조하는 공(空)의 사상을 말하므로, 곧 어리석은 자가 머물면 무심의 지혜를 득하게 되는 원래의 지리산의 뜻과 같은 의미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천왕봉 마고할미와 반야(般若)도사가 만났는데, 반야가 이곳 반야봉에서 수도함에 따라 이별이 시작되었다. 마고할미는 남편반야를 찾아 여덟 딸을 팔도로 내려 보냈다. 이들이 훗날 팔도무당의 시조가 되었다한다. 이들의 만남은 생전에 이뤄지지 못했고 마고할미는 남편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옷을 만들었다. 마고할미가 죽고 나서 갈기갈기 찢긴 나무 옷이 바람에 날려 반야봉 풍란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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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을 내려오면서 보니 삼도봉과 우리가 올라온 노루목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배낭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이곳에다 배낭을 두고 올라갔다 오는가 보다. 우리도 그럴 걸 하며 후회했다.

내려오다 미끄러졌으나 다행히 배낭이 두꺼워 엉덩이가 나중에 땅에 닿아 다치지는 않았다. 배낭이 두꺼운 것도 쓸모가 있다.

 

삼도봉(1556m)

40여분쯤 걸어가니 삼도봉이 나왔다. 그 곳에서 쉬면서 브런치로 김밥과 샌드위치를 먹었다. 정확히는 아침을 이미 먹었으니 브런치는 아니다.  김밥을 사오길 잘했다.

식사 후 신주로 만든 삼도봉 삼각뿔을 둘러보니,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세도가 이  곳에서 갈라진단다. 나는 삼도봉이 그냥 이름인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도가 갈라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삼각 뿔 위쪽은 사람들이 많이 만져 신주 특유의 윤기가 났다.

삼도봉 신주 삼각뿔(사진)

 

화개재(1320m)

삼도봉이 1560m 쯤 되는데, 계단으로 사정없이 내려가니 화개재가 나왔다. 고도가 1320m로 한참을 내려왔다. 너무 아까웠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올라가는 등산객을 보니 애처로웠다.

다시 고난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승근이가 앞장서고, 그 뒤로 종현이, 나는 떨어져서 올라가고, 수길이는 더 처져서 걸었다. 저질 체력이 공개되는 순간이다.

 

토끼봉(1534m)

30분 쯤 힘겹게 올라가니 토끼봉이 나왔다. 빨리 연하천에 도착을 하여야 라면을 먹으면서 쉴 텐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연하천 이정표가 보인다. 얼마 안 남았다.

 

연하천

드디어 연하천에 오후 1시 20분에 도착했다. 벌써 9시간째 산행이다. 연하천에는 꽤 여러 명이 식사를 하거나 누워서 쉬고 있었다.

우리도 물을 받아 수길이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벽에 재첩해장국을 먹고, 또 간식으로 김밥 먹은 관계로 점심은 간단히 하기로 했다. 가스버너에 라면 2개를 끓여 맛있게 먹었다. 물을 끓여 커피도 마셨다. 양재기에 커피를 마셔도 맛이 있다.

물이 귀하니 먹고 난 다음 설거지가 어렵다. 승근이가 꼼꼼히 종이로 설거지를 한다. 연하천에 알림판이 있었는데, 벽소령에 물이 찔끔 찔끔 나오니 여기서 물을 준비하란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통에 물을 채웠다.

연하천에서 라면과 부탄가스를 샀다. 가격은 대피소마다 다르다.

연하천에서 한참을 쉬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좀 가뿐해졌다. 계속 숲길이 계속되다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큰 바위 사이로 낮은 키의 소나무가 자라 멋있었다.

이곳에 중년남자 4명이 쉬고 있었는데, 고교 동창 9명이 종주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K1 동창이라고 하니 한 친구가 자기 아들도 K1 나왔다고 한다. 아들 나이가 31살 이라고 하니, 아마 우리보다 5-6년 연하인 것 같다.

이중 농담 잘하는 친구가 “못생긴 남자 5명을 만나면 잘생긴 남자들이 안부를 전해달란다”고 했다. 이들과 헤어져 또 발길을 재촉했다. 바위가 정말 멋있게 생겼다.

소나무가 바위사이에 외롭게..(사진)

폼이 나려나..(사진)

이제 더위가 절정에 달해 그늘 속인데도 더웠다. 바람골 같은 곳에서 쉬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 친구가 참다못해 거풍을 한다. 또 한 친구는 아예 아름다운 엉덩이까지 깐다. 이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다. 물론 서울 올라오면서 삭제되기는 했지만...

 

벽소령

거풍을 하고 피치를 올려 벽소령에 도착했다. 벽소령은 꽤 큰 대피소였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할 테이블이 남아 있지 않아, 할 수없이 땅바닥에서 하려고 자리를 잡았다. 그사이 승근이가 대피소 남쪽 아래에서 테이블을 확보했다는 낭보가 들렸다. 기쁜 마음으로 짐을 옮겼다.

아직 시간은 일렀지만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승근이는 물 길으러 70m 아래 샘으로 떠났고, 수길이는 햇반 4개를 사왔다.

벽소령에 도착하자마자(사진)

저녁은 밥에다 찌개를 먹기로 했다. 코펠에 물을 넣고 끓이다, 저염스팸, 소세지, 호박, 감자, 김치, 갓김치, 양파, 고추장을 넣고 유사 부대찌개를 끓였다.

기다리기가 따분해 종현이가 가져온 발렌타인 17년산 양주(500mm)를 작은 컵으로 돌아가며 원샷 했다. 위스키 향과 함께 속이 찌르르하다. 참치캔도 따고 오징어포 무침, 마늘쫑 장아찌, 고추와 매실 절임, 김 등 안주와 반찬이 펼쳐졌다. 산중이지만 진수성찬이다.

드디어 찌개가 끓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6시 식사를 하는 중에 스피커에서 잠자리를 배정받으라는 멘트가 나왔다 수길이가 예약증과 주민증을 걷어 갔다. 한참 후에 돌아 왔는데, 좀 늦게 가 줄이 길었다고 한다.

작은 잔이 없어 거의 원샷으로 술을 돌리다 보니 술이 빨리 떨어져 갔다. 내가 가져간 올드파(400mm)도 꺼내 먹었으나 곧 동이 났다. 승근이가 소주 한 병을 꺼내고 수길이가 J& B(600mm) 를 꺼냈다. 양주는 내일을 위해 남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묻혔다.

내가 갖고 있던 산행용 작은 용기에 들어있던 비상용 꼬냑도 조금씩 나눠 돌리고 조금 남겨 놨다. 승근이의 소주가 다 비워지자 남은 2병도 마저 꺼내라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승근이는 내일을 위해 남겨 놓잔다.

대화 내용은 대충 오늘 연무가 꼈으나 덥지 않아 좋았다. 10년 전에 왔을 때하고 숲이 너무 많이 변했다 등 매번 술 먹고 하는 얘기들 이었다. 종현이가 지리산 주제인 “How to get along with lovely wife.” 는 10여분 만에 끝이 났다. 결론은 자기 주장 내세우지 말고 마님 말 잘 들어라. 가능한 식사 준비를 시키지 마라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얘기 들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소주를 사면서 들으시길..

저녁 식사가 끝났는데도 날이 어두워 지지 않는다. 그래도 정리를 하고 짐을 숙소로 옮겼다. 벌써 수길이가 담요를 빌려 놓았다. 짐을 정리하고 밖에 나와 승근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 새로 도착하는 등산객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자려고 들어가 보니 종현이는 이미 꿈나라로 향했다. 나도 담요를 덮고 누우니 곧 잠이 들었다.

이상한 코골이 소리에 깨어보니 12시 30분 이었다. 다들 곤히 자고 있다. 잠이 안와 밖에 나왔다. 아무도 없었다. 하늘을 보니 별이 보였다. 지리산 정도면 별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별이 흐릿하게 보인다. 조금 실망을 했다. 예전에 한계령에서 대청봉 올라 갈 때 나무사이로 보이던 쏟아지는 별과 너무 대비가 된다. 계절 탓인가?

소금으로 양치를 하고, 좀 앉아 있자니 곰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해 다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여러 종류의 코골이 속에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침에 보니 벽소령 꼭대기 까지 한전 함양지점에서 전기를 끌어다 놓았다. 참 힘들었겠다.  계량기도 심야용으로 분리되어 있다.

오늘은 9시에 출발하자고는 했는데, 다들 6시 경에 일어났다. 이 시간에 다른 팀들은 80%정도가 떠났다. 매점이 7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아침에 햇반을 먹으려면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샘에 내려가서 물을 받아 올라왔다. 물 받는 사람이야기가 어제 보다는 물이 잘 나온단다. 연하천과는 달리 수도꼭지가 달려 있어 물을 받고 잠그게 되어 있다.

7시도 되기 전에 물을 끓여 국과 카레를 만들었다. 국은 육개장과 북엇국이었다 한데 넣고 끓이려고 했다가, 종현이의 제지로 따로 끓였다. 물의 양에 대한 이견으로 여러 번 물을 옮겨 담았다. 국과 카레로 밥을 먹고 커피로 입가심 한 뒤 8시 15분에 벽소령을 떠났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어제 만났던 9명 팀이 먼저 떠났다.

 

선비샘

오늘은 산행을 7시간 정도 밖에 안하는 쉬운 여정이란다. 더구나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평탄 대로라서 산책 코스란다. 희망이 보였다.오늘은 좀 서서히 가면서 경치도 구경하자고 했다.

 벽소령을 떠나니 오른쪽은 깍아지른 절벽이다. 그러나 운무가 끼어서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길이 평탄하고 짐도 좀 줄어 발걸음은 다소 가벼웠다.

또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서 걸었다. 얼마를 가니 다시 잘생긴 세 남자를 만났다. 못생긴 남자를 만나면 안부 전하겠다며 추월했다. 좀 있다 승근이가 웃옷을 벋고 가겠다고 쉬는 사이에 세 남자가 추월을 했다. 일행 중 한명이 지리산에서 처음 추월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농담을 하며 간다.

고도가 상당히 높은데도 활엽수와 구상나무가 우거져 있다. 예전 대학생 때 덕유산을 올랐을 때에는 1500m를 넘으면 관목과 고사목만 보이던 풍경하고는 사뭇 다르다. 다른 친구들도 10년 전하고는 많이 변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일까?

주열이가 왔으면 나무 이름들을 꿰고 갈 텐데, 우리가 아는 것은 상수리나무, 구상나무, 철죽 등 간단한 것 뿐이다.

한참을 걸으니 선비샘이 나왔다. 물을 채워 넣고 물맛을 봤다. 선비샘은 옛날에 못생긴 노인이 사람대접을 받고 싶어 아들에게 샘 위에 묘를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들이 샘 위에 묘소를 만들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샘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여 죽어서 나마  공경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샘 위에 무덤 같은 돌 무더기가 있었다.

이렇게 머리숱이 적었나?(사진)

 

칠선봉(1558m)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또 떠났다. 한참을 가니 세석평전, 연하봉, 천왕봉이 보이는 칠선봉에 다달았다. 쉬며 사진 찍으며, 조진 대장에게 소식을 전한다. 진영이가 전화 했다고 해서 나도 사진 찍은 것을 전송하여 지리산 종주 참여를 알렸다.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숲속을 가다 보니 높은 곳 까지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 곳을 지났다. 한숨에 올라가기 벅찰 정도로 높게 만들어져 있었다. 거의 다 올라가니 전망대가 있었다. 잠시 쉬며 지리산 북쪽 풍경을 보았다. 아직 더 올라 가야 한다며, 승근이가 수길이가 오자 떠났다. 더 올라 가니 계단이 끝났다. 승근이 왈 예전에 계단이 없었다고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연하봉으로 가다가(사진)

왜 사진을 돌릴 수 없지(사진)

공평하게 한장씩(사진)

칠선봉 근처 그런데 포즈가 좀...(사진)

아휴 힘들어 사진도 싫다.(사진)

바위가 멋있네(사진)

 

영신봉(1651m)

좀 가니 오른쪽으로 큰 바위와 전망이 트인 곳이 나왔다. 쉬고 있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혼자 올라온다. 승근이가 언제 올라왔냐고 물으니, 오늘 새벽 3시에 노고단에서 출발했단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니 오늘 천왕봉 갔다 중산리로 내려간다고 한다. 산악회를 따라 왔단다. 근육질도 아닌데 대단한 체력이다. 저질 체력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아리따운 여인은 홀연히 떠났다.

또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세석대피소를 향해 떠났다. 오늘은 볼 경치가 좀 있다.

세석에 거의 다 왔네(사진)

수길이를 기다려 다시 한번(사진)

 

세석 대피소(1560m)

좀 더 걸으니 밑에 細石(작은 돌 무더기가 있어 세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대피소가 보인다. 세석에 12시 5분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테이블을 잡으려고 기웃기웃하다 하나를 잡았다.

승근이는 물 뜨러가고 수길이는 라면을 사 갖고 왔다. 물을 끓여 라면 3개에 햇반 3개를 점심으로 먹었다. 그늘 속에 있었더니 선선해져 햇빛이 비치는 양달로 나왔다.

물을 채우고 시간이 있어 쉬었다. 황도를 하나 사먹자는 제안이 들어와 수길이가 사왔다. 피곤해서 그런지 맛이 있었다. 2개씩 먹고 국물까지 끝을 냈다. 이곳에는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촛대봉에서 본 세석 대피소(사진)

 

촛대봉(1703m)

세석부터 장터목 까지는 서너시간 걸리지만 평탄하다고 하니 힘이 났다. 세석을 떠나 촛대봉으로 향했다. 다들 예전엔 바위뿐이었는데, 산오이풀 꽃이 많이 피어있고, 관목, 그리고 구상나무가 있다고 이상해 한다. 촛대봉에도 예전에는 황량했었는데, 풀이 나 있다고 신기해한다.

군데군데 모래주머니 같은 것이 보이고, 습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인공적으로 복원한 것 같다.(나중에 알고 보니 생태계 복원을 위해 입산금지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뒷단의 참고자료 참조) 증명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촛대봉에서(사진)

그런데 가도 가도 평탄한 길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수길이도 평탄한 길이 있는데, 이상하단다. 지금 부터는 승근이가 발걸음을 늦추어 경치를 구경하며 서서히 갔다.

바위 모양도 기이하게 생겼고, 바위 속에 화석이 들어 있는 것도 같다. 가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능선이 매우 아름다웠다. 이제는 앞만 보지 않고 가끔 뒤도 돌아보면서 가는데, 앞과 뒤의 풍광이 크게 달랐다.

힘은 들지만 경치 좋네(사진)

경치 좋고, 사진 찍던 승근이 얼굴도 나오고(사진)

 

연하봉(1730m)

좀 더 가니 구름이 골짜기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기암괴석이 널브러져 있는데, 연하봉 팻말이 나타났다. 3시 30분이다.  

증명사진을 찍고 있는데, 고상한 중년 부인이 “사진 찍어 드릴까요?” 하며 말을 걸어온다. 머뭇머뭇하니 사진 찍어주고 자기네도 사진 찍으려고 한다고 했다. 부부가 산행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백무동에서 올라와 천왕봉을 거쳐 오는 길이라 한다. 남편 왈 백두대간을 하고 있는데, 지난번 산불주의 기간이라 천왕봉 노고단 구간을 못해 땜방하고 있다고 한다. 부부가 같이 하냐고 물으니, 부인은 힘들면 스킵한다고 한다. 오늘도 부인은 천왕봉엔 안 갔다고 한다. 부부가 산행하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부러웠다. 다시 결혼할 수도 없고...

연하봉을 떠나 한 20분 쯤 걸으니 산 밑에 장터목이 보인다.

 

장터목(1653m)

오늘의 목적지 장터목에 3시 55분에 도착하니 등산객들이 붐볐다. 못생긴 그룹은 이미 도착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자리를 잡았다.

장터목은 예전에 백무동 상인과 중산리 상인이 만나 물물 교환했던 터라한다.

장터목 대피소 앞 풍경(사진)

나는 화장실을 찾아 갔는데, 표지판을 잘 못 보고 샘터까지 내려갔다. 물이 졸졸 나오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싶었으나 미안해서 못했다. 물통을 안 갖고가 결국 허탕쳤다. 배낭을 내려 놨는데도 다리가 아파서 그런지 잘 못 걷겠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넣고 끓이기로 했다. 꽁치통조림, 양파, 호박, 마늘, 갓김치 포기김치 등을 넣고 잡탕찌개를 끓였다. 밥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햇반을 7개나 사왔다.

김, 저염스팸, 오징어포 무침, 깻잎 등 등 남아있는 반찬을 다 꺼냈다. 찌개가 끓자 식사를 시작했다. 찌개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었다. 승근이가 갖고 있는 소주 200mm 짜리 2병 밖에 없다. 소주를 아끼기 위해 작은 컵에 반만 딸아서 돌렸다. 그래도 1병에 두 잔씩 돌아갔다.

이번에는 스팸을 구워 먹기로 했다. 스팸을 두껍게 자르니 승근이가 얇게 저미라 한다. 소주 2병째를 따서 두 번째 돌리려는데, 스피커에서 뭐라고 한다. 수길이가 내가 갖고 있는 예약증을 내 놓으라는데 잘 못 알아들어 시간이 지체되었다. 주민증과 함께 주었다. 오늘도 늦었네 하며 수길이가 갔다.

소주를 돌려 먹는데, 수길이가 안 온다. 고생하기에 수길이 잔은 꼭 채워서 남겨 놓았다. 한참 후에 수길이가 돌아 왔다. 술이 떨어져 내가 비상용으로 가져온 코냑을 나누어 먹었는데, 두잔 만에 바닥이 났다. 술을 얻고 싶었으나 못생긴 팀 테이블에도 술은 없고 부탄가스 통만 여러 개 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보다 연배가 높은 듯 한 아저씨가 나타나서 상추는 갖고 왔는데 쌈장을 잊고 안 가져 왔다며 좀 얻을 수 있냐고 한다. 우리는 쌈장은 없고 고추장이 있는데, 좀 가져가도 된다고 했더니 감사하다며 남은 고추장을 다 가져간다. 나는 좀 덜어가도 된다고 한 것 같은데... 종현이가 술이 좀 있느냐고 물어 볼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식사 중에 승근이가 나보고 산행기를 올리라고 한다. 전혀 생각도 안했는데 쓸 수 있을까?

식사가 끝나고 고기포를 꺼냈으나, 술이 없으니 줄어들지 않는다. 오늘 남은 반찬은 다 긁어 잔반 처리했다. 후식으로 수길이가 황도 2통을 사왔으나 한통만 먹었다. 남은 것은 황도 한 통과 햇반이 하나 남았다. 커피를 나와 종현이 만 마신 후 다 치우고 대피소로 들어갔다. 아직 8시 밖에 안 되었다.

밖에 나와 앉아 있는데, 바람이 불고 추워진다. 유럽에서 온 듯 한 젊은 여인이 반팔에 7부 바지를 입고 추위에 떨고 있다. 수길이가 영어로 안 춥냐고 한다. 남자 친구와 같이 왔는데 남자 친구는 긴팔을 입었다. 옷을 벗어 줄만도 한데...

9시에 소등한다고 해서 각자 볼일을 보고 나는 아이폰을 충전을 했다. 내일 사진을 찍으려면 충전이 필요했다. 시간이 안 갔으나 8시 반쯤에 자리에 누웠다. 오늘은 베개용으로 담요를 두개 더 빌렸다.

내일은 새벽 3시 반에 떠난단다. 배낭은 대피소에 놔두고 몸만 올라가는 것이니 좀 쉬울 것 같다. 거리는 1.7km 고도는 260m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 자려는데 옆 사람이 하도 떠들어서 잘 수가 없다.

다시 밖에 나와 보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져 있다. 수길이는 반바지 차림인데 걱정이 된다. 다시 들어가 누워 눈을 감고 있다가 12시 넘어 꿈나라로 갔다.

 

천왕봉(1915m)

새벽 3시쯤 일어나니 다들 부스럭거리며 일어난다. 추울 것 같아 수길이에게 우비를 빌려 주었다. 배낭 짐을 싸고 3시 20분쯤 대피소를 나섰다. 잘생긴 3명도 산행에 나섰다. 못생긴 사람들은 어제 올랐다고 한다.

우리는 그 일행을 앞세우고 후레쉬를 비추며 등반하기 시작했다. 처음 약100m는 상당히 가팔랐다. 곧 숨이 차올랐다. 앞 팀에서 땀을 흘리면 정상에서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고 스피드를 줄이잔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었다. 그래도 중간에 숲이 있어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스피드면 너무 빨리 올라간단다. 중간 중간 많이 쉬었다. 좀 가니 오른쪽 산 아래로 마을 불빛이 보였다. 승근이 왈 중산리와 로타리 대피소일거라 한다.

또 가다 쉬었다. 아직도 빠르단다. 뒤를 돌아보니 불빛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쉬엄쉬엄 가다 통천문에 다다랐다. 거의 다 왔단다. 바람은 더욱 세졌다.

조금 바람을 피하다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우리가 갔을 때는 별로 사람이 없었는데, 곧 많이 모여 들었다. 겨우 증명사진을 찍었는데, 마치 돗데기시장 같았다.

바람 때문에 얼굴이 다 일그러지네(사진)

천왕봉 정상에서(사진)

바람세다(사진)

두경의 셀카 뒤에 승근이가 보인다.(사진)

정상에는 바람이 세게 불고 연무가 끼었다. 오늘은 일출이 5시 15분이라는데, 일출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상을 뒷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조금 내려와 보니 골짜기로 연무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빨리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으로 찍었다. 불행하게도 내가 작동법을 몰라 날렸다. 안타깝다. 승근이도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고 있다.

연무가 날라오르는 동영상(사진)

누가 찍었는지 예술이다.(사진)

찍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사진)

혹시나 해가 뜨려나?(사진)

그런데 왜 이리 졸립지?(사진)

천왕봉 바로 밑에서(사진)

정상에는 어찌나 바람이 센지 승근이는 수건을 날렸고, 종현이는 모자를 날렸는데, 다행히 모자는 찾았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예전에는 이렇게 평평하지 않았다는데, 지금은 헬기가 앉을 수 있도록 넓고 평평했다.

한 30분쯤 정상에 있었다. 이제 하산 하는 일만 남았다. 승근이는 천왕봉에 세번 왔는데, 한번도 일출을 못 봤다고 매우 서운해 한다. 올라 갈 때는 컴컴해서 못 본 경치를 천천히 보고 내려 왔다.

천왕봉에서 내려오면서 종현이는 천왕봉 가는 길에 고사목이 널브러져 있다고 했는데, 잘 안보여 좀 서운한 것 같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동안 천왕봉 복원사업이 장기간 지속된 것을 알았다. 뒷단의 참고자료 참조)

아마 10년 동안 심은 구상나무와 풀들이 자라 풍광을 변모시킨 것 같다. 다들 예전에 보던 천왕봉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하는데, 천왕봉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이구동성으로 천왕봉이 이렇게 상전벽해처럼 바뀐 것을 친구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단다.

 

제석봉(1806m)

제석봉을 통과하다 보니 고사목이 많이 눈에 띄었다. 종현이와 승근이가 예전에는 고사목만  있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현한다.

제석봉 근처에 고사목이 보인다.(사진)

제석봉의 고사목 장터목 다 내려와서 장터목에 다시 내려오니 6시 20분이다. 아직도 바람은 세차게 불고 있어, 눈에 먼지가 들어 갈 지경이다. 밖에서 아침을 먹기는 글른 것 같다.

대피소에 들어가서 짐을 마저 싸고 아침은 해 먹기 어려우므로, 고기포, 쵸코렛, 쵸코파이, 피넛, 캔 커피로 대체하기로 했다.

 

장터목(1653m) 출발

못생긴 팀과 이별을 하고 백무동 쪽을 향해 7시에 하산했다. 백무동까지 거리는 5.8km, 시간으로는 3시간 걸린다고 한다. 너무 빨리 가도 오후 4시 까지 할 것이 없으므로 천천히 가기로 했다.

한 1km쯤 내려와서 쵸코파이와 캔 커피 그리고 황도를 나누어 먹었다. 어제와는 달리 황도가 네 조각이다. 또 발길을 재촉하는데, 계단이 나타났다. 승근이는 예전에는 이런 것이 없고 돌무더기를 타고 내려 왔는데 하며,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산행하면서 세 번을 미끄러져, 승근이가 백무동 가는 길 초입이 매우 가파르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기우였다.

한참을 내려가다 어제 고추장을 가져간 초로의 신사를 다시 만났다. 어제 제석봉에서 야영을 했다고 한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단다. 짊어지고 있는 배낭이 산더미 같다.

좀 내려가니 좀 전에 만났던 사람이 묘령의 아가씨와 같은 크기의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둘이 부부라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젊어서부터 노티가 났단다.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젊었다. 종현이가 따님 같다고 하니 부인이 깔깔대며 “그렇게 봐주시면 고맙죠.” 한다.

부녀를 뒤로 한 채 하산을 계속했다. 제석봉 바람 속에 운우지정이 아니라, 운풍지정도 좋았을 거라고 한마디 한다. 내려가다 쉬고 있으니, 그 부부가 “아버지와 딸 먼저 갑니다.”란 농담을 하며 지나치는데, 종현이가 “부적절한 관계 아네요?”란 부적절한 멘트를 날린다.

 

소지봉(1312m)

쉬엄쉬엄 내려오다 보니 이제 바람소리가 그쳤다. 갑자기 적막해 진 것 같다. 내려오는 길은 숲으로 둘러싸여 경치가 잘 안 보인다.

 갑자기 작은 비명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수길이가 발목이 이상하다고 한다. 테이핑을 하는 게 좋겠다고 내가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던 테이프를 꺼내 테이핑을 해 주었다. 예전에 아이스하키하다 발목을 다쳤을 때 배워놓은 솜씨다. 야외에서 오랜만에 하니 진짜 실력이 안 나왔다. 종현이가 진통소염제가 있다고 먹어보라고 했는데, 그냥 갔다.

승근이가 스틱 2개를 수길이에게 주었다. 아픈지 걸음 거리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좀 가다 진통제를 먹어 보라고 권해 먹고 조금 쉬었더니 통증이 좀 가신다고 한다. 승근이도 무릎 바깥쪽이 아프다고 진통제를 먹고 내 스틱 하나를 빌려갔다.

 

참샘(1125m)

한참을 가니 참샘이 나왔다. 9시20분이다. 물을 마시고 얼굴을 적시며 쉬었다. 이제 부터는 경사가 좀 완만해지고,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하동바위(900m)

9시 55분에 잘생긴 바위에 도착하니 하동바위라고 쓰여 있다. 젊은 친구들도 내려가다 우리와 함께 쉬었다. 오늘 천왕봉을 올라갔다 내려간다고 한다.

수길이와 승근이는 다시 통증을 느끼는 지, 다시 진통제를 먹었다. 백무동 계곡에 물이 말랐지만 간간히 물이 괴어 있었다. 탁족을 하고 싶었지만, 수길이 발 목 때문에 참고 내려갔다.

종현이가 여기서 탁족을 하고 가자고 하니, 승근이가 더 내려가서 하잔다. 그런데 내려가면서 보니, 계곡이 점점 더 깊어졌다. 좀 전에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내려가니 탁족 할 만한 곳이 나타났다. 다행이었다. 세수를 3일 만에 해보고, 발도 물에 담갔다. 물은 그렇게 차지 않았다.

수길이는 먼저 내려간다고 떠났다. 탁족을 하고나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백무동

한 10분쯤 내려가니 백무동이 나타났다. 백무동 느티나무집 우리가 점심을 먹을 느티나무 집은 공원관리소를 지나 바로 있었다. 상당히 현대식으로 지은 펜션이었다.

수길이 큰 누님 단골이고, 종현이와 10년 전에 와서 묵은 곳이란다. 주인  아주머니는 반갑게 수길이를 맞았다.

샤워를 할 수 있냐고 물으니 며칠 전부터 더운물을 끊었다고 한다. 잘 부탁했더니 펜션 본관3호에서 샤워만 하란다. “감사합니다.” 하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본관3호에 들어가 샤워꼭지를 트니 금방 더운물이 쏟아졌다. 일류 호텔이 안 부럽다. 치약으로 이도 닦고 하니 날아 갈 것 같다. 승근 수길과 바톤 터치를 하고 나와 종현이를 올려 보냈다.

 식당은 큰 계곡 바로 옆에 있었다 맥주는 사와야 한다고 해서 우선 막걸리를 한잔씩하고 두부김치, 도토리묵, 삼겹살을 시켜 소주를 한잔씩 했다. 신선놀음이다.

날씨가 좋았다느니 오늘 일찍 내려오길 잘했다느니, 지리산이 너무 많이 바뀌어 친구들에게 알려 주어야겠다는 등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며, 소주 4병과 막걸리, 동동주를 마셨다.

먹는 도중 수길이가 쓰레기를 들고 나가 분리수거하는 장소에 버리고, 버스좌석을 확약 받고 왔다. 수길이가 너무 고생을 한다. 삼겹살 7인분을 먹고 1차가 끝났다.

경치 좋고, 술맛나네(사진)

맥주 2병과 육포 및 도토리 묵 남은 것을 들고 계곡 탐방에 나섰다. 바로 식당 밑이었다. 물은 아주 깨끗했다. 앞 뒤를 돌아봐도 집들이 안보이고, 산과 물이 어우러져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우리 자리 옆에 신사화가 가즈런이 벗어져 있었는데, 주인이 돌아와서 우리가 형님 같다고 덕담을 늘어놓아 맥주 한잔을 권했다.

신사화 벗어놨던 사람이 뒤에 보인다.(사진)

백무동 계곡에 발 담그고 사색 중(사진)

 

백무동 출발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다. 짐을 싸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아직 버스가 떠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비비빅을 사 먹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비비빅을 먹고 나서 망중한, 셀카 못찍네(사진)

창 밖의 남자(사진)

버스터미널 앞에서 오후 4시에 버스에 오르며 동서울에 언제 도착하느냐고 물으니, 평일에는 저녁 8시 10분이면 도착하는데 오늘은 휴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풍경도 좋았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잠에서 깨니 6시 10분이다. 핸폰을 꺼내 찍은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좀 있으니 죽암 휴게소에 도착했다. 소프트크림을 하나씩 먹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지리산이 너무 변했다느니 고사목이 너무 안 보인다는 등 수다를 떨다보니 동서울에 8시 20분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오늘은 헤어지고 뒷풀이를 하기로 했다.

 2호선 전철을 다 같이 타고 수길이는 잠실, 종현이는 종합운동장에서 내리고, 나와 승근이는 사진 찍은 것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신도림에서 내려 헤어졌다.

저녁은 햄버거를 사서 집에서 먹었다. 마눌님이 생각보다 얼굴이 안 상했다고 한다. 내가 중간에 가끔 내 사진을 멜로 보냈는데, 매우 피곤해 보였단다. SNS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이번에 절감했다.

뱃속에 들은 것을 반납하고 체중을 재보니 2kg이나 늘어있었다. 체중이 줄어야 맞는 것 아닌지?

어쨌든 지리산 종주가 무사히 끝난 것에 감사하고, 종현, 승근, 수길 덕분에 평생 못해본 지리산 종주를 경험하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이번에 환갑 넘은 친구들이 반야봉을 포함하여 총 37.6km의 지리산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뒷풀이는 7월 2일 저녁에 하기로 했다. 진영이도 참석한다고 한다. 술 마신 뒷이야기는 나중에 65산에서 들으시길..

2012년 6월 26일 신도림에서 김두경

 

지리산 종주산행 일정

(2012년 6월21일~24일) 

 

                                 도착 / 출발

서울용산역출발                /22:45

구례구역도착            03:02/03:50 조식

성삼재                    04:25/04:40

노고단대피소            05:20/05:30

노고단                    05:40/06:00

돼지령/피아골삼거리  06:55/07:05 (통과시각)

임걸령                    07:10/07:25

노루목                    08:00/08:15

반야봉                    08:50/09:05

삼도봉                    09:50/10:25  간식(김밥,

                                              빵, 과일)

화개재                    10:45/10:50

토끼봉                    11:20/11:45

연하천                    13:20/14:40 중식(라면)

벽소령                    17:00/08:15 석식/숙박/조식

선비샘                    09:25/09:40

칠선봉                    11:15 (통과시각)

영신봉                    11:50/11:55

세석대피소               12:05/13:15 중식

촛대봉                     13:55/14:05

연하봉                     15:30/15:35

장터목                     15:55/03:20 석식/숙박

천왕봉                     04:45/05:20

장터목                     06:20/07:00 조식 행동식으로

참샘                        09:20/09:30

하동바위                   09:55/10:05

느티나무집                11:00/15:40 산행종료,

                                              목욕, 중식

백무동출발                       /16:00

 

 주 요 전 화 번 호

 *** 연하천대피소 : 010-6536-1586    

*** 벽소령대피소 : 011-1767-1426

*** 세석대피소   : 010-3346-1601    

*** 장터목대피소 : 010-2883-1750

*** 백무동정류장 : 055-963-3745~6

 

 

<참고 자료: 천왕봉 세석평전

생태계 복원작업>

벌거벗은 천왕봉, 등산객 흙봉지로 살린다 [중앙일보]

입력 2012.06.22 01:09 / 수정 2012.06.22 01:18

“입산 전 받아가 정상에 뿌리세요”

이번 주부터 토양 복원 캠페인

국국립공

조진
Good .
자세한 산행기 역시. 두경이다.
지난 바이칼 여행기 때 알아봤지.
마치 내가 같이 산행하고 있는 것
같다.

12·07·03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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