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 5시 모닝콜, 6시 식사, 6시 30분 출발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송이사가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놓았다. 다시 생기가 돌아 온 것 같다.
밥 먹으러 식당에 올라갔더니 별이 보인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안 보이던 것이... 서쪽 하늘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별동별이 떨어진다. 오랜만에 본다. TV에서 운석을 주우면 비싼 값에 팔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운석이나 주워 볼까? 여기는 고도가 높아서 다 타지 않고 남은 것이 있을 것 같다.
카이라스는 관광청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라싸에 남는단다. 힘드니까 핑계를 대는 것 같다.
남쵸(纳木错)까지는 편도로 230km란다. 그런데 속도를 내지 못해 4~5시간이 걸린단다. 남쵸는 하늘 호수라는 뜻이다. 티베트의 신성한 호수(聖湖) 3개(남쵸 호수, 마나사로바 호수, 얌드록초 호수)중의 하나다. 고도가 4,700m가 넘어 긴장된다. 남쵸는 라싸 시가지를 나와 칭짱공로(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도로 이정표에 3,866km 라고 쓰여 있다. 베이징까지의 거리다. 라싸에서 좀 왔으니까 베이징까지의 거리가 고속도로로 약 3,900km 정도 될 것 같다.
고속도로는 2차선으로 꽤 잘 닦여 있다. 그런데 남쵸까지 4군데의 검문소가 있단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매 검문소의 도착시간이 정해져 있단다. 처음 검문소까지 32km를 30분에 가야한다. 아! 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알겠다.
우리 버스를 추월하는 차가 많다. 한참을 가니 갓길에 차가 많이 서 있다. 너무 빨리 와서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기다리는 거란다. 우리나라의 레이더로 점검하는 구간속도 제한 같은 조치다. 우리 제도를 티베트 관리자가 배워 가면 어떨까? 아마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안 될 거다. 10년 전에 북경 공항의 엘리베이터 의자에 앉아있는 엘리베이터 걸을 봤는데, 쓸데없는 일이지만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 이었을 거다.
며칠 전에 기차로 왔던 길을 거꾸로 간다. 멀리 거대한 설산이 보인다. 다를 내려 사진을 찍으란다. 화장실은 돈을 내야하니 돈을 준비하란다.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이이사께서 핸드폰이 없어졌단다. 오늘 아침에 형수님과 문자를 하셨다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안 난단다. 좌석을 샅샅이 찾아 봐도 없다. 라싸에 남아 있는 카이라스에게 호텔방과 로비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찾아봐도 없단다. 카이라스가 이이사께 전화를 해보니 벨은 울린단다. 이이사께서는 핸드폰이 오래되어 바꿀 때가 되었다고 혼잣말을 한다. 이이사께 나중에 호텔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먼저 화장실에 갔는데 사용료가 1위안이다. 돈을 받아서 그런지 간덴사원 보다는 깨끗했다. 역시 밖에서 보니 거대한 설산이 아름답다. 룽타와 타르쵸를 얼기설기 많이도 엮어 놨다. 증명사진을 찍고 버스에 탔다. 이이사께서 앉은 좌석과 밑을 잘 살펴봐도 핸드폰이 안 보인다. 핸드폰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해서 최이사가 KT에 전화를 걸어 발신 정지를 시켰다.
이정표에 양바지(羊八井)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농사가 아닌 목축업이 시작된단다. 아마 강수량이 부족해서 인 것 같다. 주변 가옥 옆에 야크 똥들이 한 무더기씩 있다. 이곳 주민들은 저녁에 난로가 있는 부엌에 모여 있다가 방에 가서 잠을 잔단다. 겨울에는 땔감이 야크 똥 밖에 없어 춥겠다.
길에 자전거 여행자가 간간히 보인다. 이곳까지 와서 자전거 여행을 하나? 정말 부럽다.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니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남았단다. 산소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전에 마셔야 효과가 있다고 들었다. 4,700m 고산지역에서 트래킹을 하니, 라싸에서 사온 산소를 마셔야겠다. 내일부터는 낮은 곳으로 가니 산소가 더 필요할 것 같지 않다. 다른 일행에게는 미안하지만 산소통이 하나라 우리 팀 4명만 마실 수밖에 없다.
산소통을 돌리니 다들 괜찮단다. 반강제로 흡입하시라고 했다. 나와 이이사는 두 번을 흡입하고 송이사와 최이사는 한번만 흡입하고는 괜찮단다. 나는 한번 더 흡입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남은 산소통을 선반에 올려놓았다.
또 다시 검문소가 나왔다. 화장실을 가기위해 내렸는데, 꽤 넓은 광장에 좌판이 늘어서 있다. 돈을 안 받는데도 우리나라를 뺨치는 호화 화장실이었다. 남자 화장실 속에는 애기용 소변기와 좌식 수세식 변기가 앙증스럽게 하나 있다. 사람이 없을 때 사진을 찍었다.
나와서 보니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판다. 한 좌판에는 강화도 참무 같이 생긴 것을 깎아서 판다. 하나를 집어 들고 1위안 하니 아무소리 안하고 준다. 더 가격이 싼 것 같다. 버스에 들어와 일행들과 나누어 먹었더니 맛이 괜찮다. 더 살 걸...
이제 부터는 탕구라 산맥을 통과하기 위해 버스가 위로 위로 계속 올라간다. 좌우에는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고, 옆에는 개울이 흐른다. 유목민들이 텐트를 치고 양과 야크를 방목하고 있다. 물론 야크 똥 무더기와 함께...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드디어 해발 5,190m의 라켄라 고개에 다 달았다. 내려서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관광 온 버스가 많이 서있어 차 댈 데가 없다고 돌아오다가 들른단다. 좀 아쉽다. 버스가 고개위에 다 달으니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저 멀리 쪽빛 호수가 보인다.
신성한 남쵸호수는 여신이고, 넨칭탕구라봉은 남신에 해당된단다. 하긴 누가 보더라도 하얀 설산 밑에 쪽빛 호수, 신성해 보일 것 같다.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이 보여도, 버스로 20분 쯤 가야 호숫가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들렀다. 이곳은 공짜란다. 식당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멀고 돈도 내야 한단다.
우리가 가는 식당은 양바지 호텔 레스토랑이란다. 젓가락과 양은 사발만 주니 그런 줄 알란다. 식당에 들어가니 예의 아홉가지 정찬이 나왔다. 정말 접시는 하나도 안 주고 사발과 젓가락만 준다. 사발에다 요리와 밥, 탕을 담아먹을 수밖에 없다. 음식 맛은 여지껏 먹은 중 가장 질이 떨어진다. 이곳 남쵸에는 티베트인들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당국에서 허용하고 있단다. 밥을 먹으면서 송이사가 먼저 언덕에 올라가서 남쵸를 구경하고 호숫가를 보겠단다.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남쵸 설명서에 50~60m 언덕에 오르면 경치가 끝내주는데, 상당히 힘이 든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도 먼저 언덕을 올라가 보고 힘들면 중도에 내려오기로 마음먹고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니 매우 숨이 차다. 한 50m 쯤 가니 숨이 좀 돌아 왔다. 급경사 산을 오르는 정도다.
중간에 중국 관광객들이 모여 있어 가보니 경관이 탁 트여 있지 않다. 돌아오려는데 사진을 찍어 달란다. “이 얼 샨”하고 사진을 찍는데 세 명이 점프를 한다. 그래도 타이밍은 맞았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만족해한다.
다시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는데 신선생이 나를 추월한다. 신선생은 내가 생각했던 View Point를 넘어 정상으로 간다. 나도 20m쯤 따라가다가 내 체력을 생각해야지 하고 포기했다. 신선생은 제2봉, 제 3봉을 다 정복했단다.
View Point에 가니 호수와 설산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과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도 찍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으니, 이이사님과 심총무가 올라온다. 각자 인증사진을 돌아가며 찍어주었다. 그런데 내 인증사진을 집에 와서 찾아보니 없다. 동영상 버튼을 잘못 누른 것 같다 ㅠㅠ. 내려오려는데 저쪽 끝에 반대편 호수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가 보았다. 경치는 그냥 그랬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이이사를 만나 가 보시라고 했다.
다 내려와 조금 쉬고 있는데, 이이사께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려온다. 어쩐 일이시냐고 했더니, 계단 옆에서 살짝 미끄러졌는데 근육이 놀란 것 같단다. 지나가던 신선생이 상태를 보고는 통증이 크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인대가 조금 늘어난 것 같다며 얼음찜질을 하란다.
이이사께서 좀 쉬시겠다고 해 나와 신선생, 심 총무는 호숫가로 갔다. 호숫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니 나 혼자만 남았다. 호숫가에는 치장한 야크를 타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돈을 내야 한단다. 나는 호숫가를 한가히 걸었다. 물이 아주 맑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으로 걸어가서 한참 앉아서 경치를 구경했다. 남쵸가 염호라는데, 정말 물이 짠지 물맛을 봤다. 아주 조금 찝질한 맛이 났다. 예전에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에서 맛 본 물맛은 꽤 짰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좀 더 사람 없는 곳으로 가다 돌아 왔다.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다. 천천히 구경을 하는데 동쪽 하늘 끝에 구름이 끼면서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비구름이 서서히 이쪽으로 오는 것 같다. 우산도 안 들고 나왔는데, 비 맞으면 큰일 날 것 같아, 식당 쪽으로 빨리 걸었다. 가는 길에도 마니차 돌리는 곳이 있다.
점심 먹은 식당에 와 보니 이이사께서 계신다. 이이사께서도 호숫가에 가 보셨단다. 나는 밖에 나가 목에 두른 수건에 물을 적셨다. 물이 꽤 차다. 이이사께 정강이를 찬 수건으로 둘러보시라고 했다. 통증이 있는 곳에는 얼음찜질이 최고다. 좀 시원하다고 한다. 한 번 더 찬수건 찜질을 하는 동안 우리 일행들이 속속 돌아온다.
내가 남쵸 호수 물맛을 보니 별로 짜지 않다고 하니, 옆에서 호숫물에 야크 똥이 둥둥 떠다나던데 한다. 나는 맑은 물만 봤는데... 하긴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 물맛을 봤으니 깨끗한 물이겠지 하고 위로했다.
버스에 올라가니 일행이 반 쯤 와 있다. 나는 숨이 차지 않아 남아 있는 산소통을 쓸 분을 찾았다. 얼굴이 창백한 분이 손을 들어 사용하라고 주었다. 좀 있으니 산소통을 다시 돌려준다. 필요한분 있으면 사용하라고 했다. 15위안 짜리 산소통을 산 분이 사용하더니, 50위안 짜리가 훨씬 낫단다.
그러는 동안 최이사와 송이사가 왔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산소 산소 하고 외친다. 필요가 없다고 해서 다른 일행에게 주었다고 하니 약간 실망한다.
버스는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좀 더 가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내가 본 비구름이 이곳까지 온 거다. 호수를 돌아보니 아까 봤던 쪽빛 색깔을 온데간데없고 회색빛으로 변해있다. 우리가 호수에 머문 동안 햇살이 비친 것이 천만 다행이다.
다시 라켄라(那根拉) 고개를 올라가 버스가 정차했다. 날씨는 바람이 불고 나빠졌다. 고산증이 오는지 몇몇 분만 버스에서 내려 인증사진을 찍는다. 해발 5,190m 내가 올라가 본 곳 중 제일 높은 곳이다. 약 10m 만 더 올라가 5,200m를 기록하고 싶었으나, 버스 속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그만 두었다.
차창 밖에 자전거 여행가가 보인다. 5,200m 라켄라 고개를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싣고 올라오고 있다.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이렇게 험한 고개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오는 줄 알았다. 힘들게 고개를 다 올라왔으니, 남쵸 호수까지 신나게 내려가는 기쁨을 만끽하겠지...
고개를 계속 내려오는데, 오른쪽에 우리나라 공사장에 트럭바퀴에 묻은 흙을 씻어내는 것 같은 물웅덩이가 있다. 자세히 보니 쇄차냉각(殺車冷却) 이라고 씌어져 있는 표지판이 보인다. 모든 차가 그곳에 들어갔다 나온다. 아! 차가 언덕을 내려오면서 브레이크를 많이 밟아 열이 난 바퀴 프레임을 식히는 기발한 방법이다. 세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좀 더 내려오니 대관령에서 볼 수 있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가 돌진하는 언덕이 나온다.
내려가다 버스가 선다. 화장실이 급한 분은 다리 아래에서 볼일을 보란다. 잠깐 내려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최이사는 사진기를 들고 아래로 내려가며 열심히 찍는다. 버스가 내려가다 최이사를 태웠다.
아까 들렀던 깨끗한 화장실이 있는 곳에 잠시 섰다. 여성분들이 깨끗한 화장실에 들러야 한다고 우르르 내린다. 아까 있었던 노점상들은 다 집에 갔나 보다. 아무도 없다. 돌아오는 길은 한번 지나간 곳이라 지루하다.
이이사 핸드폰은 여행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면 20만원쯤 돌려받을 수 있단다.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경찰에 신고하는데 약 한 시간쯤 걸린단다.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하나?
좀 있으니 내 옆에 계신 이이사께서 핸드폰을 찾았단다. 나는 카이라스가 호텔에서 찾았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버스 좌석 옆에 끼어 있었단다. 아까 그곳도 열심히 봤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이사께서 손을 의자 옆에 넣어보니 핸드폰이 만져지더란다. 어쨌든 일행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경찰서에도 안가도 된다. 천만다행이다.
차창 왼쪽에 붉은색 산이 나타난다. 인터넷에서 본 미국 아리조나 주에 있는 무지개 색깔의 산과 비슷하다. 가이드가 이곳 흙은 캐내어 집 벽에 바르면 방풍 및 방습 효과가 있단다.
시간이 늦어 호텔을 들르지 않고 식당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6시 30분경에 식당에 도착했다. 그제 점심을 먹은 천유향랄해(川渝香辣蟹) 식당이다.
오늘 해발 4,700m에서 트래킹을 하는 큰일을 해서 그런지 목이 컬컬했다. 맥주를 시키려고 하는데 각 테이블에 맥주가 3병씩 배달된다. 이이사께서 핸드폰 때문에 소동을 벌여 미안하다면서 맥주를 쏘신단다. 최이사가 오늘은 바이주(고량주)를 한번 먹잔다. 한 병에 얼마냐고 하니 45위안이란다. 큰 병은 아니고 250mm 정도의 작은 병이다.
맥주와 바이주를 나누어 먹는데, 신선생이 고량주 폭탄을 제안한다. 내가 먼저 약하게 타서 한잔씩 돌렸다. 맥주잔이 소주잔 두배 정도 밖에 안 되어 서울서 먹는 폭탄보다 양이 반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나마 마시는 사람은 서너명이다.
술을 마시는 도중에 정샘 사모님이 와서 술 한 잔 달란다. 술을 따라주니 홀짝 마신다. 술을 잘 하는 줄 알았는데,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실까봐 술이 약한 데도 대신 와서 마셨단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도니 술이 바닥났다. 한 병을 더 시켜 마셨다. 내일은 해발 4,400m에서 구경만하니 괜찮겠지...
요리는 지난 점심에 먹은 것 보다 고급으로 시킨 것 같다. 여행도 끝나가므로 가이드 수고비를 어떻게 걷어 주냐고 물으니, 히여동에서는 안 걷는단다. 수고비를 주면 괜히 이상한 관습이 생길 수 있으므로 그만 두잔다.
잘 먹고 나서 술값을 계산하는데 225위안이란다. 고량주 값 90위안을 제하면 맥주 값이 첫날 저녁보다 매우 비싸다. 이이사께서 술값 명세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카이라스가 잘 모르겠단다. 내가 100위안을 내고 나머지는 이이사께서 냈다. 내가 낸 100위안은 나중에 최이사가 공금에서 돌려줬다.
호텔로 돌아와 다시 물을 3리터 샀다. 티베트에서는 농부산천(農夫山泉)이라는 생수가 판을 치고 있다. 아마 재벌이 됐을 것 같다. 송이사는 물을 끓여 보온병에 넣었고, 나는 남아 있는 포도를 깨끗이 닦아 내일 나누어 먹기로 했다.
일곱째날 8월 16일 금 맑음
오늘도 새벽 5시 모닝콜, 6시 식사, 6시 30분 출발이다. 오늘은 암드록쵸 호수를 보고, 장쯔(江孜)에서 백거사를 본 후, 티베트의 제2의 도시 시가체로 이동한다. 버스는 포탈라 궁을 지나 서쪽으로 간다. 타칭 막내라는 분께 포도를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다. 라싸 공항 가는 고속도로가 나온다. 4차선이다. 티베트에서 본 길 중 제일 좋은 길이다. 오른쪽에 라싸강이 흐르는데, 수량도 많고 넓다. 이곳에 라싸 같이 큰 도시가 세워진 이유를 알겠다.
타칭 막내분이 암드록쵸 호수의 내력을 부산 사투리로 읽어준다.
이이사님께 형수님이 걱정하실 수 있으니, 내 핸드폰으로 문자드리시라고 했다. 곧 형수님 한테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문자가 온다. 저녁에 핸드폰을 켜니 형수님한테 전화가 두 번이나 와 있어 이이사께 전화 하시라고 했다. 많이 걱정하시는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오시기 전에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극구 말리셨단다. 친구분한테 고산지대에 다녀오다 안 좋은 일을 당한 사람 이야기를 들으셨단다.
좀 더 가면 수장터가 나온단다. 천장과 수장의 비율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대부분 천장과 수장을 한단다. 최근 한족이 늘어나 화장도 하긴 한단다. 티베트 사람들은 수장을 해서 물고기가 시신을 먹기 때문에 물고기를 안 먹는단다.
앞산 산중턱에서 아래로 콘크리트 구조물이 뻗어 있다. 저것이 무어냐고 물으니 암드록쵸 호숫물을 이용해 수력발전을 하는 거란다. 산 밑에 양수수력발전소가 있단다. 산에 터널을 뚫어 물을 끌어오나 보다. 나중에 알아보니 높이 846m의 수차를 이용해 발전을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양수수력발전소란다.
버스는 곧 좌회전하여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버스가 염소 떼를 피하기 위해 선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오른쪽이 천길 낭떠러지다. 오른쪽을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린다. 버스 기사는 꼬불꼬불한 길을 속도도 안 줄이고 치고 올라간다. 안 보이는 곳에서 트럭이 막 달려 나온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뼈도 못 추스르겠다.
낭떠러지 위에 평평한 곳에서는 농사를 지었던지 밭은 있으나 현재 키우는 농작물이 없다. 물어보니 물 사정이 안 좋아 농부들이 낮은 곳으로 이주하여 지금은 농사를 안 짓는단다. 한 20분쯤 올라가 8시 50분에 캄바라(崗巴拉) 고개 정상에 다다랐다. 해발 4,794m 정상에서 약 30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먼저 화장실을 가니 2위안을 내란다. 잔돈이 없어 5위안을 손에 들고 “샨 위안”을 외쳤더니 3위안을 거슬러 준다. 카이라스 왈 잔돈을 안 주면 그만이란다.
화장실에는 용변보는 사람들로 꽉 찼다. 모두 벽을 향하지 않고 입구를 향해 변을 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벽을 보고 볼일을 볼 것 같은데 이상하다. 아마 벽을 보고 용변을 보다 공격을 당할 까봐 그러나?
밖에 나와 보니 날씨는 바람이 불고 쌀쌀하다. 햇빛이 나서 언덕아래 암드록쵸 호수가 에머럴드 빛을 띤다. 캄바라 고개는 관광버스가 많이 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기서도 관광객이 치장한 야크를 타고 사진을 찍고 있다. 또 중국의 사자 같은 개도 있다. 사진을 찍으려면 20위엔 정도 돈을 내야한다.
호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은 후 버스에 탑승했다. 그런데 차속에 낮선 사람들이 있다. 아! 버스를 잘 못 탔다. 어쩌나 버스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우리 버스가 보인다.
카이라스가 추울지 모르니 파카를 갖고 오라고 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추워 면피 했단다.
다 모인 후 버스는 반대편 길로 내려간다. 호수가 길쭉하게 생겨서 가면서 실컷 볼 수 있다. 고도로 300~400m 즘 내려가니 휴게소가 있다. 내려 보니 암드록쵸(羊卓雍湖) 해발 4,441m라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찍으려니 돈을 내란다. 안 찍고 나중에 몰래 찍었다. 이곳도 염호(鹽湖)라는데 물맛은 안 봤다. 물이 매우 맑다.
이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이 살고 있단다. 카이라스가 10년 전 이곳에서 가이드 생활을 할 때 동네 아이들이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도 도망가지 않았단다. 이곳 물고기로 매운탕을 해 먹으면 맛있단다. 그런데 물속을 자세히 봐도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떠났다. 한참을 가도 호수가 계속 보인다. 검문소에 도착하니 좀 소란스럽다. 군인이 버스에 올라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의 카메라를 내 놓으란다. 카메라 주인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도 계속 내놓으란다. 카이라스가 신경질적으로 카메라를 주란다. 군인이 찍은 사진들을 자세히 점검하더니 돌려주고 내려간다. 롭썅이 카메라 주인에게 고맙단다. 알고 보니 군인 사진을 찍었는데, 버스에 올라오기 전에 지웠단다. 가이드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카이라스 왈 사진 찍은 사람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지만, 심하면 가이드가 관광객에게 설명을 잘 안했다고 면허를 취소하는 경우가 있단다.
배는 안 고프지만 이번 식당에서 밥을 안 먹으면 먹을 데가 없단다. 중경개현반점(重庆开县飯店)이라는 식당에 들어가서 화장실부터 찾았다. 화장실이 밖에 멀리 떨어져 있다. 설산이 화장실 너머로 살짝 보인다. 돈은 안 받는다. 여기도 젓가락과 주발만 준다. 요리는 어김없이 탕을 포함하여 아홉 가지다. 맛은 별로다. 고추장, 김 등을 풀어 놓고 먹고 있는데, 신선생이 반 병 정도 든 백주를 내 놓는다. 또 한잔 했다.
식사가 끝나가는데 악사가 들어와 연주를 한다. 가이드가 나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이이사께서 연주료를 준다. 한곡 더 부탁하니 더 하고서야 나간다. 다른 관광객들도 이 식당으로 몰려든다.
버스가 산 밖에 안 보이는 곳으로 돌진한다. 길이 없을 것 같은데도 산사이로 길이 나타난다. 아까 본 설산이 왼쪽에 보인다. 다들 창밖으로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카롤라빙하(卡若拉氷川, 해발 5,560m)에 도착했다. 2007년에 작성한 UN 기후변화전문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히말라야 빙하는 2035년 이전에 다 녹아 사라질 거란다.
20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빙하 앞으로 걸어가니 곧 눈사태라도 날 것 같다. 관광객을 위해 야크 똥 무더기와 야크 털로 짠 텐트를 쳐 놓은 것 같다. 인증사진을 찍고 돌아오는데 최이사가 앉은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다. 그 모습을 핸드폰에 담았다. 멀리 걸어오는 신선생 모습과 룽타와 타르쵸도 담았다.
버스로 돌아와 보니 이이사께서 버터차를 마셔 보란다. 화장실 앞에서 공짜로 준단다. 한잔 얻어 마셔 보니, 달콤한 게 맛있다. 재작년에 말레이시아에서 마셔본 밀크 티 맛이다. 왜 돈을 안 받는지 궁금하다.
이곳에는 유채꽃이 널브러져 있다. 낭추 계곡에 들어서니 진한 에머랄드 색깔의 호수가 나온다. 빙하가 내려오면서 깎인 빙퇴석(氷堆石)이 물속에서 햇빛을 받으면 반사와 굴절 등의 현상으로 빙하호가 에머럴드 색깔을 띠게 된단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이곳 빙하호의 물색깔이 정말 아름답다. 뉴질랜드 빙하호에서 본 색깔 보다 더 진하다.
이곳은 말라저수지(滿拉水庫)란다. 아! 천연 빙하호가 아니라 인공 호수구나. 이 물로 수력발전을 해 시가체에서 사용한단다. 조금 가니 댐이 나왔다.
앞 산위에 멋있는 성이 나타난다. 장쯔종(江孜宗) 캐슬이란다. 1900년대 초에 티베트군이 영국군과 맞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항복하지 않고, 절벽에서 떨어져 장렬한 죽음을 택한 곳이란다. 그 옛날에 영국군이 이런 오지까지 침범을 했나? 혀가 내둘러진다. 성 앞에는 영웅기념비가 있다.
3시경 장쯔(江孜, 해발 3,800m)에 도착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백거사(白居寺, 펠코르 최데 사원)를 구경하고 난후 10만 불탑(쿰붐, 스투파)을 보고 3시 50분까지 나오란다. 사원을 여러 개 보니 백거사도 그냥 보통 사원 같아 보인다.
10만 불탑은 총 9층인데 4층까지는 4면 8각형이다. 5층부터 정상까지는 원형으로 되어 있고 높이는 35m다. 네팔 건축양식이란다.
스투파로 들어가는데 돈을 내란다. 나는 사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어 사진 안 찍는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할 수 없이 사진 찍는 값 10위안을 내고 들어갔다.
탑 주위에 작은 방이 수도 없이 있는데, 그 속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부처님들이 있다. 컴컴해서 잘 보지는 못했지만 찍힌 사진을 보니 매우 화려하다. 이렇게 화려하게 치장한 부처님은 처음 본다. 빨리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또 한 층을 올라가도 비슷한 형태다. 밖에 나가 왼쪽으로 도니 티베트 순례객이 오른쪽으로 돌라고 손으로 가르킨다. 아! 여기도 코라구나... 3층으로 가는데 꼭 다락방에 올라가는 것 같다. 컴컴하고 대들보가 낮아서 세 번이나 머리를 부딪쳤다.
3층 코라에 나와 보니 높아서 그런지 주변이 잘 보인다. 백거사는 둘레 산등성이에 성벽을 쌓아 놓아 성처럼 생겼다. 구경을 하고 내려오는데 우리 일행이 올라온다. 내가 본 것들을 설명해 주고 머리 조심하라며 내려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6층까지 올라 갈 수 있는데 모르고 중간에서 내려왔다.
밖에는 햇살이 매우 강했다. 시간이 조금 남았으나 목이 말라 백거사를 나왔다. 물을 하나 사 먹었다. 그늘에 들어가니 살 것 같다. 부산에서 온 정샘 부부가 나온다. 가게에 들러 CD를 하나를 샀단다. 버스에 올라가니 너무 더워 다시 나왔다. 다들 돌아와 백거사를 떠났다. 장쯔종(江孜宗) 입구에 버스를 세우더니 성을 볼 사람은 내리란다. 빨리 나가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시가체에 가까이 온 것 같다. 가로수로는 포플러가 많이 심어져 있고, 라싸 보다 집들이 크다. 이곳의 집은 이층인데, 아래층에서는 가축을 기르고 위층만 주민이 사용한단다. 담은 토담인데 데코레이션을 멋있게 해 놨다. 담 위에는 벽돌 같은 것이 쌓여 있다.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소똥이란다.
이곳에는 야크가 살지 않아 소똥을 무더기로 모아 놓고 있었다. 여름에는 소똥을 물에 개어 담 벽에 붙이면 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단다. 자세히 보니 데코레이션 같이 보인 것은 그냥 담 벽에 소똥을 발라 놓은 거다. 겨울에는 소똥으로 벽돌을 만든단다. 담 위에 올려놓은 것은 소똥 벽돌이란다.
차창 밖을 보고 있는데 요상한 바위가 보인다. 티베트에 여성암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빨리 사진을 찍었다.
시가체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검사소에서 운행시간을 체크하기 때문에 천천히 갈 수 밖에 없단다. 지루하다.
드디어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日喀则, 해발 3,900m)가 보인다. 라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여기에는 새로 지은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띈다. 시간은 오후 5시다.
타쉬룬포사(扎什伦布寺)는 지금까지 본 사원 중 가장 컸다. 티벳 불교의 달라이라마 다음으로 높은 지도자 판첸라마가 대대로 거주했던 곳이라, 그 위상과 규모가 상당하다. 라싸의 3대 사원인 간덴사원, 세라사원, 드레펑사원과 함께 겔룩파(황교) 4대 사원으로 불린단다.
타쉬룬포사에는 네개의 법당이 있는데, 다 보고 6시까지 모이란다. 이곳에는 판첸라마의 영탑이 있다. 4대 판첸라마의 영탑과 5~9대 판첸라마의 합장영탑, 그리고 10대판첸라마의 영탑이 있다.
가이드 롭쌍의 설명을 들으며 사원으로 들어갔다. 축 늘어진 가지의 나무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이 나뭇가지를 촛불 심지로 쓴단다. 첫 번째 잠칸첸모에는 26m 높이의 금동미륵좌상이 있는데, 세계에서 제일 큰 금동미륵불이란다. 이곳에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모여 있다.
우선 다른 곳부터 보기로 했다. 한 곳을 들어가 구경하고 나와 골목을 걷는데, 스님이 지나간다고 사진을 찍으란다. 스님이 모자를 삐딱하게 쓴 것이 좀 날라리 같다. 스님의 신발은 부츠인데 계절마다 달라 네 가지 종류가 있단다. 겨울에는 야크 가죽 부츠를 신는단다. 현재 이 사원의 스님은 약 800명이란다. 한창 때는 8,000명에 달했단다.
시가체에는 의학 공부한 스님이 많고, 의료비 지원이 돼 아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또 한 곳의 법당에 들어갔다. 7개의 은빛 큰 주발에 물이 가득 담겨져 있다. 보기에도 멋있다. 이는 석가모니 탄생 설화의 일곱 걸음과 연관이 있단다. 탄생 설화에는 보살이 남의 부축도 없이 균형있게 조용히 일곱 걸음을 걸었단다. 그 때 평평한 발의 발꿈치는 마치 빛나는 일곱별과 같았고, 일곱 발자국마다 모두 연꽃이 피어났단다.
물을 담아 놓은 이유는 물은 돈이 들지 않아 누구나 물을 떠 놓고 치성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어머님들이 정한수를 떠놓고 오밤중에 치성을 드리는 장면을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 돈을 들이지 않고 치성 드리는 한 방법인 것 같다. 상당히 서민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쓴 조치다.
최근에 중국 정부가 복원한 판첸라마 영탑은 금이 비싸서 은으로 복원했고, 바닥도 시멘트로 발라 원래 것과 차이가 난단다. 내가 사원이 훼손되었을 때 누가 영탑의 금과 보석을 가져갔냐고 물으니, 물론 예외는 있지만 티베트 사람들은 사원에서 물건을 가져가지 않는단다.
지금은 스님이 교대하는 시간이란다. 법당 앞에 가니 젊은 스님들이 장난을 친다. 우리나라 스님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장난을 치다가 벽에 그려진 부처님에게 경건한 인사를 하고 법당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따라 들어 가 보았다. 간덴사원과 같이 스님들이 염불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오니 6시에 가까웠다.
가이드가 버스로 돌아가겠냐고 물으니, 아까 보지 못했던 금동미륵불을 보러 가잔다. 아직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가이드가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니 일부는 꼭 보겠단다. 우리가 보면 나머지 일행이 한 30분은 기다릴 텐데...
가이드가 카이라스에게 전화를 한다. 결론이 안나 여자 총무에게 의견을 조정해 보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결국 남아 있는 11명이 줄을 서서 보기로 했다.
여기도 새치기가 있다. 타칭 막내분이 나서서 새치기를 밀어낸다. 법당에는 작은 종이 매달려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종을 한 번씩 쳐 본다. 계단을 올라가니 사람들이 바닥에 보석이 박힌 큰 만(卍)자를 정성스레 쓰다듬고 간다. 보석은 검은색 돌, 터콰이즈 석 등 등이 박혀 있다. 하도 쓰다듬어서 반짝반짝 윤이 난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얼굴이 무지 큰 미륵불이 있다.
바로 돌아서 나오고 싶었는데, 우리 일행이 미륵불 뒤쪽 코라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갔더니 꽉 막혀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이 초초하다. 겨우 빠져 나오니 6시 25분 쯤 되었다. 우리일행이 다 나올 때까지 기다려,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안합니다.” 하고 버스를 타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버스는 식당으로 직행했다. 시가체에서는 시가체 맥주를 먹어 봐야 한다고 해서 카이라스에게 내가 오늘 맥주를 쏜다고 했다.
음식은 마지막 저녁이라서 그런지 고급 요리가 나왔다. 그런데 맥주가 안 온다. 재촉을 해서 받아보니 캔맥주 5개다. 브랜드는 청과주(靑果酒)다. 맛이 과일 주 같았다. 다들 맛이 별로 인지 마실 생각을 안 한다. 다른 테이블에 맥주가 안 나와 물어보니 맥주가 떨어져 사러갔단다. 할 수 없이 남은 두 캔을 다른 테이블에 하나씩 나눠 맛을 보라고 했다. 결국 맥주는 더 나오지 않았다.
신선생이 등산 쌕에서 Chivas Regal 1리터짜리를 꺼낸다. 술 마시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선다. 너무 하신다 했더니 비행기에서 750mm를 사려했는데 없어서 1리터 짜리를 샀단다. 도수가 높아 다들 몸을 사린다.
카이라스가 오더니 정샘 사모님이 정샘 술 먹이지 말라고 신신 당부 한단다. 우리는 마시고 싶은 사람만 마시고 있는데, 오해를 것 같다. 정샘 왈 본인은 술을 잘 못하지만 분위기는 사랑한단다. 부산에 밤늦게 돌아가서 그 다음날 출근해야 하므로 부담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술을 잘 하는 것 같다.
요리가 덜 나온 것 같다. 마지막이냐고 물어 보니 하나가 더 남았단다. 마지막 요리는 계란찜에 짜장면 소스 같은 것은 얹은 요리가 나왔다. 맛은 괜찮다.
술 마시는 사람이 서너명이라 아무리 마셔도 술이 줄지를 않는다. 1/4 쯤 남았을 때 심총무가 안쓰러운지 잔을 들고 거든다. 겨우 바닥을 냈다. 나도 내 실력 이상 마셨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괜찮겠지.
여정이 막바지에 다다랐는데, 아직 티베트 국수 뚝바를 먹어보지 못했다. 아마 이번에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아쉽다.
우체호텔(烏孜大酒店 Wutse Hotel)에 도착했다. 야빙관(야크)호텔보다 좀 좋은 것 같다.
여권을 내고 방 키카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신선생이 이야기를 건다. 약간 혀가 잘 안 돌아간다. 모른척하고 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갔다. 물을 사러 로비로 내려오니 쇼핑간다고 모여 있다. 호텔을 나와 물 4병을 사서 나누었다. 내일도 새벽 6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7시에 떠난단다. 샤워를 하고 일찍 잤다.
여덟째날 8월 17일 토 맑음
오늘은 아침 5시 모닝콜, 6시 식사, 7시 출발이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뒤척이는데 숨이 가쁘다. 고도 3,900m 밖에 안 되는데 이상하다. 빨리 샤워를 하고 짐을 싸고 식당에 내려가니 아무도 없다.
가이드가 나를 불러 어제 송이사가 부탁한 가정집에서 만든 보리 맥주를 가져왔단다. 아마 택배로 받은 것 같다. 큰 통에 들어있는 맥주를 1리터 짜리 페트병 네 개에 옮겨 담고 있다. 얼마에 샀냐고 하니 20위안 주었단다. 돈을 준다고 하니 시가체가 자기 고향이라며 안 받겠단다. 나는 억지로 30위안을 주었다. 가정식 맥주는 방부제를 안 넣어서 3일 안에 마셔야 한단다. 오늘 점심에 시음해 볼 수 있겠다.
가이드가 여권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내 여권을 찾아 식사를 하려는데, 메뉴가 매우 간단하다. 계란, 만두, 야채(짜자이), 죽이 전부다. 가이드 왈 만두가 맛있단다. 속이든 만두와 짜자이와 죽을 먹었다. 밥을 먹는데도 숨이 차다. 어제 과음을 한 것 같다.
다시 호텔방에 가서 짐을 마저 싸들고 내려왔다. 밖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좀 나을 것 같아 나가서 심호흡을 하는데도 숨이 가쁘다. 버스에 타서 맥박을 재보니 1분에 80번 쯤 뛰는 것 같다. 머리는 안 아프니 증세는 심하지 않은 것 같다. 카이라스에게 숨이 차다고 하니 마지막 날은 다들 쌩쌩한데 이상하단다. 최이사가 고산증이 나타나는 것은 산에 올라가는 역순인 것 같다고 놀린다.
형수님으로부터 “ '잘 있다 걱정마오' 문자 받고 환호! 평창 기도원에서 이권사님 짝궁 인사드립니다." 라는 문자가 왔다. 완전 문학소녀시다. 인천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애틋한 문자가 날아와 이이사께 중계했다.
버스가 라싸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도 대여섯 시간은 족히 가야한단다. 어제 오던 길과는 다른 평탄한 길로 간다. 이번에는 강이 버스 오른쪽에서 흐른다. 시가체 근방에는 보리농사가 한창이다. 최근 관개시설을 많이 해서 나무와 보리가 잘 자란단다.
한참을 가다 화장실 가고 싶은 분은 내리란다. 그런데 화장실이 안 보인다.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을 이용하란다. 예전에 바이칼 여행을 하면서 남녀가 버스 양쪽으로 나뉘어 소피를 보던 생각이 났다. 들판에는 보리가 한참 자라고 있다. 이이사님 왈 땅이 척박해서 그런지 알곡이 많이 안 달렸단다.
가이드 롭쌍(Lobsang Tashi)에게 성이 롭썅이냐고 물으니, 티베트에는 성이 없단다. 이름은 네 자로 짓는데 스님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단다. 예전에 말레이시아에 회의를 가서 말레이시아 사람이름의 뒷부분이 성이냐고 물었더니, 성이 없고 누구의 아들 누구라고 이름을 짓는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성을 갖고 있는 민족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초기에는 약 15%의 양반들만 성을 가졌다고 하니 그리 흉 볼 일은 아니다. 나중에 다들 성씨를 갖게 되었을 때, 그래도 성공한 김, 이, 박 씨를 많이 택해 우리나라에 김, 이, 박 씨가 많단다. 일본은 성씨 갖기 운동을 할 때, 동네이름을 성으로 많이 택해 성씨가 매우 다양하단다.
다시 버스를 탔다. 좀 가니 오른쪽에 큰 계곡이 나오며 물살이 꽤 빠른 강이 나온다. 얄룽창포강이란다. 이강은 라싸 쪽으로 흐르고 있다. 지류인 라싸강과 만나 방글라데시에서 갠지스강과 합류하여 인도양으로 흘러간단다. 계곡과 높은 산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답다. 이곳에 댐을 세우면 물 사정이 좀 나아질 텐데... 하긴 고도가 급하게 낮아져 댐을 건설해도 많은 물을 가두지 못할 것 같다.
강 반대편에는 기차 길 공사가 한창이다. 강 옆에 길을 낼 여유가 없으면 산속으로 길게 터널을 뚫고 있다. 내년에 라싸 시가체 구간이 완공된단다. 앞으로 이 기차 길은 인도까지 연결 될 거란다. 인도에서는 싼 중국 공산품이 몰려올까봐 신경을 많이 쓴단다.
철로 공사터의 기차화물칸에는 동영상에서 본 콘크리트 침목 위에 철 선로를 연결한 약 20~30m 짜리 모듈이 여러 겹 쌓여 있다. 최근에는 침목을 깔고 그 위에 선로를 얹는 것이 아니라, 기차가 가면서 앞서 설명한 모듈을 기중기로 들어 올려 기차 길을 깔기 때문에 기초공사만 끝나면 선로를 빨리 깔 수 있단다.
가다가 화장실에 들렀다. 여기 화장실은 지붕이 없다. 요금은 2위안이다. 화장실 옆에 좌판이 있는데, 수석, 뿔빗 등을 판다. 소똥 무더기도 옆에 있다. 한참을 가다보니 강 반대편에 어제 올라갔던 캄바라 고개와 수력발전 수로가 보인다. 라싸에 거의 다 온 것 같다. 나는 하늘나라로 잘 올라가라고 산 벽에 흰색으로 칠한 사다리를 찍으려고 찾아 봤으나 결국 찍지 못했다.
여자 총무가 어제 타쉬룬포사에서 늦게 나온 죄를 속죄하기 위해 10위안씩 내서 청량음료를 돌리잔다. 흔쾌히 동의했다. 총무가 캔 콜라와 사이다를 사서 나눈다.
점심은 중경반점에서 먹었는데 중국에는 중경반점이 많다. 롭썅이 가져온 보리 맥주를 마셨다. 맥주라기보다는 과실 주 맛이 난다. 알콜 도수는 2도가 조금 넘는단다. 맛은 별로 없지만 롭썅의 성의를 봐서 많이 마셨다. 정작 가정식 보리 맥주 타령을 했던 송이사는 별로 안 마신다. 나중에 물어보니 맛이 별로 없어서 그랬단다. 여행에서 돌아 와서 하루 정도 배가 쌀쌀 아팠는데, 정수되지 않은 물로 빚은 보리 맥주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이번 점심에는 생선 튀김이 나왔다.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나중에 카이라스가 점심에 먹은 물고기가 인육을 먹고 자란 물고기라며 겁을 준다. 아마 암드록쵸의 맑은 물에서 자란 물고기 같다.
내 등산 쌕에는 아직 처음처럼 소주 한 병이 남아 있다. 점심에 술을 적게 마시려고 갖고 내리지 않았다. 버스 속에서 롭쌍과 사진을 찍고 한국에서 유명한 소주라며 기념으로 주었다. 찍은 사진을 롭썅에게 전송했으나 안 들어간다.
드디어 라싸 공항에 도착했다. 운전기사와 티베트 가이드 롭쌍은 여기서 작별했다. 롭썅에게 수고했다고 하니 헤어지는 것이 좀 섭섭한 모양이다. 다들 짐을 챙겨 공항으로 들어갔다. 짐을 부치려고 줄을 서있는 동안 마지막 남은 소주 1/5병을 꺼내 신선생과 한잔씩 나누어 먹었다. 남은 소주를 버릴 수 없어 먹었는데, 술을 좋아하는 신선생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VIP 카운터를 보니 레드 카페트가 깔려 있다. 라싸에서는 VIP를 많이 챙기나 보다.
짐을 부치고 나니 이이사께서 티베트에서 마신 중국차 맛이 좋아 선물로 차를 사려는데 같이 가잔다. 라싸 공항에는 면세점이 없었다.
따라가 보니 차 종류가 여러 가지라 어떤 것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 이이사께서 4개를 고르니 가격이 너무 비싸다. 다시 좀 덜 비싼 것으로 골라 2개를 달라고 하니, 말이 안 통해 영어를 하는 남자 매니저를 불러온다. 매니저는 우리가 깎아달라는 줄 알고 “No bargain!!”을 외치고 있다. 그게 아니라 2개를 달라는데 선입관이 있어 못 알아듣는다.
차를 산 후 탑승구 쪽으로 들어가려는데 카이라스가 무엇을 샀냐고 한다. 차를 샀다고 하니 이곳은 비싼데 한다. 그럼 일찍 알려 주지... 나중에 열어 보니 보이차 같이 둥근 원판 모양으로 생겼다. 아마 발효차인 것 같다.
짐 검사를 하고 탑승구로 갔다. 시간이 남아 커피 한잔을 하기로 했다. 커피를 시키는데 한잔에 56위안이다. 서울의 호텔 커피 값 뺨친다. 메뉴를 보고나서 안 마실 수도 없고 ㅠㅠ. 지난번에 내가 커피 값을 내서 그런지 이이사께서 계산을 했다. 미안하다.
푹신한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는데, 비행기가 한 시간 연발 한단다. 계속 앉아 있으니 송이사와 최이사가 온다. 다들 커피 시키고 나서 너무 비싸다고 한마디 씩 한다. 출발 시간이 계속 늦어진다. 최이사가 오래 앉아 있는 바람에 커피 값은 뽑았다고 농담을 한다.
오늘 핸드폰을 계속 켜 놨더니 벌써 배터리가 다 닳았다. 기지국이 없는 곳을 지나와서 그런가 보다. 서울서 사온 보조 배터리를 연결하여 충전하려는데 안 된다. 서울서 시험까지 하고 왔는데, 왜 안 될까? 그새 고장이 났나? 다시 시도해 보다 포기했다.
오후 4시 비행기인데 6시 가까워서야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날아오르니 티베트의 산들이 눈 아래 펼쳐진다. 나는 창가석이 아니라서 목을 빼고 보고 있으니 거대한 설산들이 나타난다. 다들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사진을 못 찍었다. 아쉽다.
옆자리에 앉은 이이사께서는 이어폰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손으로 지휘를 한다. 비행기 안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고 고도가 낮은 청두(성도)로 가니 마음이 놓이시는 것 같다. 내 왼쪽에는 티베트사람이 탔는데 담배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식사가 나왔다. 카레라이스다. 원래 청두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시간이 늦어 할 수 있을지 몰라 카이라스에게 밥을 다 먹어야 하냐고 물으니, 만일을 위해 식사를 하란다. 맛은 별로 없다. 스튜어디스에게 맥주를 달라고 하니 없다고 해서 주스를 마셨다.
심심해서 중국신문을 보았다. 중국신문은 6장 정도로 매우 얇다. 신문이 간체자로 쓰여 있어 의미를 알기 어려웠으나, 대강의 뜻은 알겠다. 재미있는 것은 미연(微軟)이 중국에 윈도우 8.1을 내 놓는다는 뉴스다. 무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이크로소프트를 뜻 글자로 써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이사께서는 힘들었던 것을 다 잊으셨는지, 친구분들에게 티베트가는 방법을 알려줄 야무진 생각을 하고 계시다.
드디어 청두(成都) 공항에 도착했다. 쓰촨성(四川省)의 성도로 옛날 유비의 촉나라 수도다. 시간은 거의 8시에 가까웠다. 화장실을 들렀다 짐 찾는 데에 가보니, 짐 나오는 기계는 돌아가는데 가방은 하나도 안 보인다.
좀 있으니 키가 큰 여자 공항직원이 와서 이쪽으로 오란다. 짐 나오는 데가 바뀌었나? 카이라스가 가서 알아보니, 짐이 하나도 안 왔단다. 내일 집에 못 가나? 집에 이 소식을 알려주려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져서 최이사 핸드폰으로 짐이 없어져서 내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최이사가 “집에는 가야지요.” 한다. 짐을 못 찾아도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얼마 안 걸렸다.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일행 한 분이 보조 배터리를 가져와서 충전하란다. 정말 고맙다. 보조 배터리를 핸드폰에 연결하고 충전을 할 때 뒤쪽에 있는 단추를 누르란다. 아! 내 것도 뒤에 단추를 누르라고 설명서에 쓰여 있던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다시 내가 가져온 보조 배터리를 연결하고 뒷부분에 있는 단추를 눌렀더니 충전이 된다. 아! 정말 바보다. 다 예행연습까지 해보고도 일주일 만에 잊어버리다니 한심하다. 빌린 보조 배터리를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돌려주었다. 충전을 하면서 짐을 못 찾아도 내일 서울 갈 거라고 집에 문자를 넣었다.
한참 기다리니 우리 짐이 9시에 라싸를 떠나는 비행기로 올 거란다. 짐표를 모두 걷어 여자 공항직원에게 줬다.
짐 없이 마중 나온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버스기사가 우리가 늦게 나와 골이 나서 말을 걸어도 대답도 없단다. 호텔까지는 약 40분 걸렸다. 청두는 사천성 성도로 상당히 큰 도시다. 밖에 어둠이 깔려 자세한 것을 볼 수가 없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 받았다. 지금은 시간이 늦어 정찬은 할 수 없단다. 호텔 근처에서 국수를 사 먹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 간단히 세수를 하고 9시 30분에 다시 모였다. 송이사와 이이사께서는 몸이 안 좋은지 식사를 안 하겠단다. 최이사는 내려왔다가 식사를 안 하겠다고 돌아가려다가 다시 조인한다.
호텔 옆으로 돌아가니 24시 편의점이 있고, 우회전해서 골목으로 들어가니 음식점들이 있는데 사이즈가 작다. 카이라스가 물어보니 장사가 끝났단다. 골목으로 더 들어 가니, 좌판에 꼬치구이 재료를 많이 쌓아 놓은 식당이 있다. 들어가 앉을 자리는 없었지만, 보도에 접이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 준단다.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는 동안 수박과 백주 및 맥주를 사온다. 면을 먹을 사람 수도 셌다. 수박은 달고 싱싱했다. 맥주 한잔씩 따르고 건배를 했다. 곧 이어 여러 가지 종류의 꼬치구이가 나왔다. 안주가 있고 평지에 내려왔다는 안도감으로 맥주가 잘 들어간다. 신선생 테이블에서 백주 한잔 마시란다. 정중히 사양했다. 국수가 나와 먹어보니 면이 탱글탱글 한 것이 맛이 있다. 국물은 그냥 그랬다. 국수를 한 그릇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다들 여행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 젊은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피해줄 시간인 것 같다. 최이사에게 들어가겠다고 하고 일어나 호텔로 걸어갔다. 좀 있으니 최이사가 따라왔다. 옆에서 안 들어가시냐고 해서 자리를 비워주었단다. 편의점에 들러 물 4병을 샀다. 6위안이다. 티베트보다 싸다. 최이사와 각각 2병씩 나누어 들고 호텔 방으로 갔다.
송이사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짐이 없어서 그냥 물로 양치와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체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자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새벽 1시 30분이다. 짐이 왔단다. 카이라스는 따로 부친 밥솥이 없어졌다고 공항에 항의 전화를 한다. 송이사와 짐을 찾아 올라와 다시 눈을 붙였다. 피곤한 하루였다.
마지막날 8월 18일 일 맑음
새벽 5시에 모닝콜, 5시 30분에 출발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쌌다. 이제 평지에 내려 왔으므로 혈압약만 먹고 바이아그라는 안 먹어도 된다.
여권과 지갑을 챙겨 보는데, 여권이 없다. 여러 번 봐도 안 보인다. 아차! 나 때문에 오늘 다들 서울에 못 가는게 아니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아찔하다. 송이사에게 여권을 꺼내 보지도 않았는데 여권이 없어졌다고 하니, 송이사가 좀 뜸을 드리다 어제 호텔에 제출하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아! 내 정신 좀 봐라 정말 깜빡했다. 천만 다행이다.
로비에 내려오니 여권이 테이블 위에 늘어 놓여 있다. 내 여권을 찾아서 버스에 탔다. 이미 상당수가 버스에 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호텔 이름을 보니, 개빈주점(凱賓酒店)이다.
청두 시내 길의 중앙분리대에는 아열대 나무가 심어져 있다. 6시 15분쯤 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8시 비행기니까 시간은 충분한 것 같다. 입구에서 폭발물 점검을 하고 체크인카운터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카이라스가 잘못 왔다며 다른 건물로 가야 한다고 소리친다. 밖으로 나가 옆 건물을 보니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시간이 없으니 뛰란다. 빠른 걸음으로 쫒아가니 앞에 전동카트가 있다. 카트에 짐을 싣고 떠나려는데 돈을 내라는 것 같다. 카이라스가 100위안짜리 몇 장을 주고 거스름돈을 돌려받는다. 우리일행이 다 타지 못해 한 사람을 남겨 놓고 떠났다.
한참을 가 옆 건물에 들어가니 또 폭발물 검사를 한다. 타칭 막내분이 전광판을 보더니 Air China가 안 보인단다. 잘 못 봤겠지... 카이라스가 들고 있는 짐을 부친다. 그리고 물어 보더니 맨 끝 쪽을 가리키며 빨리 가야 한다며 뛰어간다.
우리 일행은 여러 조로 나뉘어졌다. 나는 중간에 서서 뒤에 오는 일행에게 맨 끝으로 가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카이라스가 되돌아오더니, 잘 못 와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며 또 뛰란다. 정신없이 다시 전동카트를 타고 원래 위치로 되돌아 왔다. 이번에는 맞나?
한참 걸어가니 우리가 체크인할 카운터가 나왔다. 이번에는 맞는가 보다. 다들 고산지대에서 훈련한 덕에 뛰어 다녔다고 한마디씩 한다. 카이라스가 정신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여권을 걷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할 수 없이 내가 나서서 여권을 걷기 시작했다. 거의 다 걷을 즈음 심총무가 자기가 마무리 짓겠단다.
나는 내 가방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이사께서 나보고 여행사를 차리란다. 다들 웃었다. 카이라스는 청두공항에 여러번 와 봤을 텐데, 왜 실수를 했을까? 또 왜 우리 비행편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을까? 알려 주었으면 이런 혼선은 없었을 텐데, 아쉽다. 만일 회사에 다니다 이런 실수를 했다면 완전 좌천감일 거다.
짐을 부치고 비행기 탑승구로 갔다. 기다려 비행기에 오르니 우리가 단체인데도 내 자리는 상당히 앞쪽 창가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움직이다 계속 서 있다.
옆에는 진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샘이 탔다. 김샘은 영어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중국 산동성에 교환 선생님으로 다녀왔단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교육청과 싸웠던 이야기, 또 중국어 공부를 하던 중 교환 선생님 모집이 있어 뽑혔던 이야기를 들었다. 굉장한 열혈 선생님이다.
김샘에게 일행 중 여성이 많은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남자는 혼자서 여행 왔다가도 현지에서 그룹을 짜서 오지를 여행하는 매니어들이 많지만, 여성은 그런 것이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단다.
카이라스가 비행기가 안 뜨려나 보다고 농담을 한다. 한참 후에나 비행기가 떴는데 1시간 정도 연발이다. 우리 비행기 CA435는 허페이(合肥 상하이 옆)를 들러 서울로 가는 비행기다. 11시 10분경 허페이에 내렸다. 개인 소지품만 들고 내렸다 다시 타란다.
서울로 가는 승객은 따로 검사를 받았다. 검사대에 가니 직원이 한국말을 잘 한다. 그런데 단체비자라서 따로 줄을 서야 한단다. 비자 순서대로 다시 줄을 서서 검사대를 통과했다.
이이사님을 기다려 커피나 한잔하시자고 하니 안하시겠단다. 탑승구에서 기다리다 다시 비행기를 탔다. 이제 정말 한국으로 돌아간다. 시계를 서울 시간으로 맞췄다.
점심이 나왔다. 메뉴는 닭과 오리가 있어, 나는 오리 고기를 택했다. 맛이 별로다. 닭도 닭 같지 않단다. 음료는 국제선이라 그런지 와인이 있다. 나는 레드와인과 커피 그리고 물을 시켰다. 옆의 김샘은 술을 안 마셔서 와인을 시켜 나를 달라고 하려다가 쪽 팔려서 그만 두었다. 커피에는 설탕 외에 가배반려(咖啡伴侶)라고 쓰인 봉지가 따라 나왔다. 프림인 것 같아 뜯어보니 맞다. 나중에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미국의 Coffee Mate 브랜드 네임을 미연(微軟)처럼 뜻글자로 써 놓은 것이었다.
카이라스와 심총무는 음식이 부실했는지, 승무원에게 컵라면을 주고 뜨거운 물을 부어 달란다. 얼마 후 승무원이 가져왔는데, 심총무의 짜파게티에 물이 많이 들어있다. 짜파게티가 어떤 것인지 몰랐나 보다. 다들 웃었다. 나는 컵 짜파게티가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
드디어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3시 40분경이다. 인천에 도착했다고 집에 문자를 보냈다. 우리 일행은 짐을 찾자마자 떠나고 있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바쁘겠다. 나도 짐을 찾아 카이라스와 남아있는 우리 일행에게 인사를 한 후, 우리 4총사와 함께 나왔다. 밖에서 잠시 기다리며 이이사님 어디 계시냐고 했더니, 송이사가 형수님과 껴안고 난리났단다. 눈을 돌려보니 반대편 출구에서 마치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분을 만난 듯이 목을 껴안고 계시다. 완전 닭살 부부시다. 네 명이 다시 만나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집 가는 버스는 50분에 한 대가 있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버스 매표소로 가니 4시 20분에 버스가 떠난단다. 10분 남았다. 빨리 버스를 찾아 탔다. 다행이다.
버스를 타고 그동안 찍은 사진을 둘러보면서 이이사, 송이사, 최이사, 신선생, 김샘에게 사진을 보냈다. 최이사로 부터 몰래 카메라 고맙다는 문자가 날라 온다.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저녁 밥상에는 불고기가 올라 왔다. 혼자 여행가서 미안한데, 불고기까지 만들어 주다니... 맛있게 먹었다. 별로 피곤한 줄 몰랐는데 돌아 와서 며칠간은 잠을 많이 잤다. 물을 많이 안 마셔서 그런지 자면서 깨는 일도 없다. 서울은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코에서 코딱지가 한 움큼 나왔다. 이제 서야 호흡이 편해졌다.
며칠 후 이이사께 안부 문자를 넣었더니, 정강이의 작은 뼈가 부러져 반 기브스를 하고 계시단다. 전화를 해보니 신선생이 준 소염진통제가 떨어져 병원에 가서 X레이를 찍었더니 뼈가 부러졌단다. 통증이 별로 없다고 하셔서 그러려니 했는데, 참을성이 정말 많으신 것 같다. 괜히 티베트에 가자고 한 것 같다. 6주간 반 기브스를 해야 한단다. 뒷풀이도 미뤄질 수밖에 없겠다.
송이사는 딸 결혼식을 잘 치뤘다. 결혼식에서 보니 미용실에서 팩도 하고 화장을 했는지 얼굴이 훤하다.
돌아와서 동창 모임에 나갔더니 백병원 정형외과 의사가 나왔는데, 며칠 전 전주에서 학회를 했단다. 혹시 충남대병원의 신선생을 아냐고 했더니, 터키에도 같이 가고 학회에서 가끔 본단다. 좋은 사람이란다. 세상은 정말 좁다. 한 다리만 걸치면 다 아니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신선생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 식사를 한 번해야 하는데, 무섭다. 신선생은 서울에 가끔 올라온단다. 이이사님 다리가 나으면 날을 잡아야겠다.
우리가 다 환갑이 넘었다고 했더니, 네분이 다 키도 크고 체력도 좋을 뿐만 아니라 사이좋게 고산여행을 하는 것이 부럽단다. 그러나 우리가 부러움 받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어렴풋이 알았다.
SK텔레콤에 전화해서 중국으로 사진을 보내는 방법을 물어 롭쌍에게 사진을 보냈다. 김샘도 사진을 보냈단다.
나는 9일간의 여행을 복기해 여행기를 쓰느라 머리에 쥐가 났다. 이번 여행에서 9일간 하루도 빼지 않고 술을 마셨다. 내 일생 이렇게 긴 기간 동안 매일 같이 술을 마신 적은 없었다. 다 누구 때문인 것 같다. 이번 티베트 여행은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멤버들이 좋아 즐겁게 다녀왔다. 다들 좋은 추억 거리가 되길 기원하면서 이만 마무리 한다.
2013년 8월말 자택에서 김두경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