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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170 음식으로 보는 중국-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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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8 21:53:28, Hit : 1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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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발바닥(熊掌)
곰발바닥은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 전인 은(殷)나라 때부터 이미 먹기 시작한 것으로 은의 마지막 임금인 주(紂)는 옥으로 만든 잔에 좋은 술을 부어 마시고 안주로는 곰발바닥요리를 즐겨 상아젓가락으로 이것을 집어먹었다고 한다. 이어서 주(周)나라 때에는 위에서 소개한 여덟 가지 진귀한 요리에 포함되어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다.
곰발바닥은 우리가 존경하는 맹자선생님과도 관계가 있다.
언젠가 맹자는 말하였다.
“물고기도 먹고 싶고 곰발바닥도 먹고 싶으나 두 가지를 모두 먹을 수 없을 때에는 물고기보다는 곰발바닥을 택할 것이다. 목숨도 아깝지만 의(義)와 예(禮)도 지키고 싶은데 모두를 바랄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와 예를 지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맹자의 불가득겸(不可得兼), 즉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없다는 가르침이니, 이것을 겉에 나타난 대로만 해석한다면 근엄한 맹자선생님도 곰발바닥요리의 맛을 인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곰발바닥은 중국에서도 장백산(長白山, 백두산의 중국식 이름)의 것을 최고로 치는데 이곳의 곰을 검은 눈 곰 또는 검은 곰(黑熊)이라고 부른다. 장백산에는 좋은 꿀이 나는데 이 곰은 벌의 침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두터운 앞발을 휘둘러 벌집을 부수고 꿀을 핥아먹기를 즐긴다. 그래서 네 개의 발바닥 중에서도 꿀을 핥아먹는데 주로 쓰는 오른쪽 앞발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은 왼쪽 앞발이라고 한다. 딛고 서거나 몸의 중심을 잡는 데 쓰는 뒷발은 단단하고 질겨 제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갓 잡은 곰의 발에 물기가 묻으면 금방 상하므로 종이나 헝겊으로 핏물을 잘 닦아낸 다음, 커다란 항아리에 석회를 깔고 다시 그 위에 볶은 쌀을 뿌리고서 곰발바닥을 놓는다. 다시 항아리의 나머지 공간을 볶은 쌀로 가득 채우고 뚜껑을 석회로 봉하여 한두 해 저장해 두면 변질이 안되면서 잘 마른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렇게 번잡하게 가공하여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약식으로 해먹는다. 곰발바닥에 황토 진흙을 발라 불 속에 넣고 구은 다음 흙덩어리를 부수면 가죽과 털은 모두 단단하게 굳은 진흙에 묻어 떨어지고 살과 뼈의 덩어리만 남게 되는데 이것을 양념에 찍어 먹는다.
그러나 곰발바닥이 어디 예사 먹거리인가. 이것을 제대로 조리하자면 먼저 앞에서와 같이 말린 발바닥을 데치듯 약간 삶은 다음, 털을 뽑고 꿀을 발라 다시 약한 불에 한시간 쯤 삶다가 꺼내어 꿀은 씻어내고 닭고기 국물에 다른 재료를 섞어 세 시간쯤 뭉근불로 졸인다. 완전히 익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꺼내어 뼈를 발라내고 또 다른 재료를 넣고 함께 쪄내면 바로 저 유명한 곰발바닥요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꿀을 발라서 삶는 것은 꿀이 발바닥의 냄새를 제거해 주기도 하거니와 속살이 골고루 익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비룡(飛龍)
비룡은 다른 말로 송계(松鷄)라고도 하는 날짐승으로 꿩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꿩은 아니다. 왜냐하면 닭과 꿩은 다같이 꿩과에 속하지만 비룡은 송계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국사람들의 말에 천상용육(天上龍肉) 지상려육(地上驪肉)이라는 것이 있다. 하늘에서는 용의 고기가 제일이고 땅에서는 검은 말 고기가 제일이라는 것인데 말고기가 정말 좋은 것인지는 필자도 모르지만 여기서 용의 고기란 여의주를 물고 다니며 조화를 부리는 용이 아니고 바로 비룡을 가리키는 것에 유의해야 하겠다.
이 비룡은 중국 동북부 지방의 깊은 산 속에 살지만 때로는 길가에도 내려앉으며 사람들이 알을 꺼내 가면 졸졸 따라올 정도로 모성애가 강하다고 한다. 비룡은 탕으로 끓이는 것이 제격인데 맑은 국물에 비치는 하얀 속살이 매우 깨끗하다. 비룡은 기름기가 없어 국을 끓일 때에는 물처럼 맑은 국물을 내놓지만 그냥 구우면 살이 딱딱해져서 맛이 없으므로 비룡을 구울 때는 반드시 달걀 흰자나 녹말가루를 입힌 다음 굽는다.
비룡탕은 너무도 귀한 것이어서 공식적으로는 최고의 국빈에게만 대접했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닉슨, 크메르의 시아누크, 북한의 김일성이 이것을 먹어본 사람으로 꼽힌다. 그러나 지금은 사육이 가능해져 아무데서나 후어꾸어(火鍋)의 육수를 내는 데 쓰고 있다.
◆사슴(鹿)
사슴은 예로부터 인류가 즐겨 먹던 짐승이다.
세계 곳곳의 고대 벽화를 보면 사슴을 사냥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사슴을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인지 사슴과 관련한 교훈도 많다.
먼저 녹피(鹿皮)에 가로 왈(曰)자라는 말이 있다. 사슴껍질은 워낙 부드러워 여기에 가로 왈자를 써놓고 이리 당기면 가로 왈(曰)자요 저리 당기면 날 일(日)자가 되므로 이리 저리 원칙과 줏대가 없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이 사슴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으나 그 중에서도 제일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뿔(鹿茸)이다. 이 녹용을 잘라 닭고기 국물에 햄, 죽순, 표고버섯 따위를 넣고 끓인 것이 청탕녹용(淸湯鹿茸)이다
청나라의 임금들은 만주족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사슴 피를 즐겨 마셨다. 사슴피는 성욕을 일으킨다는데 그래서인지 청나라 때에는 다른 왕조 때보다 궁궐의 성문란이 심했다고 한다.
사슴의 몸에서 나는 것 중에 가장 기괴한 것은 사슴의 눈알로 만든 요리이다. 만주족들은 본래 사슴의 눈알을 밝은 달과 같이 생각하였는데 이것을 가지고 만든 요리가 앞에서 언뜻 소개한 명월조금봉(明月照金鳳)이다. 사슴의 눈알을 빼내어 깨끗이 닦은 다음 닭고기 국물에 넣고 삶는다. 이때 눈알에 흠집을 내면 절대로 아니 된다. 삶은 눈알을 반으로 잘라 다시 달걀 흰자와 닭고기 국물을 붓고 쪄내어 그 중간에 반숙한 비둘기 알을 놓으면 되는데 밝은 달(즉 사슴의 눈알)이 봉황의 알(비둘기 알)을 바라본다는 식으로 미화하여 지은 이름이 바로 명월조금봉인 것이다.
사슴의 힘줄(鹿筋)과 꼬리(鹿尾)는 고대 중국의 여덟 가지 진귀한 요리에 이미 들어가던 것으로 힘줄은 동물성 아교질이 풍부하여 죽순, 햄 따위와 함께 닭고기 국물에 넣고 오래 끓인 것을 외녹근이라 하는데 쫄깃쫄깃한 맛이 우리 입에도 맞는다. 꼬리(사진설명)는 껍질을 벗겨 말리면 길쭉하면서 납작한 것이 대개는 어른 손바닥의 반쯤 크기인데 토막을 내어 쪄 먹는다. 중국인들은 꼬리가 뿔보다 약효가 좋다하여 한약방에서 보면 가격이 녹용에 못지 않다.
이렇게 버릴 것 없는 사슴이고 보니 역대 청나라 임금들의 사슴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였다. 매년 만주쪽에서 일곱 차례에 걸쳐 사슴 공물을 받았는데 맨 처음에는 소설(小雪)을 전후하여 사슴혀 5다발, 사슴힘줄 10다발, 사슴꼬리 10다발, 사슴무릎 20다발, 사슴창자 10다발, 사슴밥통 5다발, 사슴고기 37덩이를 거두어 들였다고 한다.
◆원숭이머리
후두라 하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아 그거 원숭이골요리로 생각하겠지만 실은 동물성 식품이 아닌 식물성이다.
중국의 동북부지방 깊은 산림의 죽은 나무 줄기에 자라는 후두는 겉모양이 원숭이의 머리같이 생겼으므로 붙여진 이름일 뿐, 어디까지나 버섯의 일종이다. 큰 것은 무게가 14kg이 될 정도로 크므로 어두운 곳에서 언뜻 보면 원숭이가 몸을 숨긴 채 머리를 쏘옥 내민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데 이 후두는 마주 바라보며 자라는 특성이 있어 이쪽 산등성이에 한 무더기가 있으면 건너편 산등성이에도 반드시 한 무더기가 있다고 한다.
후두는 다른 버섯과는 달리 싱싱한 채로 조리해야 제 맛이 난다고 하는데 노신(魯迅)이 이것을 맛보고서 인공 재배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중국의 여러 곳에서 재배하여 말린 것을 팔고 있으므로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다.
위와 같은 만한전석을 한두 명이 아무 때나 풀코스로 즐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명이서 기회를 잡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돈 많은 식도락가들이 중국천자의 기분을 내어 만한전석을 즐긴 일은 가끔 있었다.
북경의 방선반장(倣膳飯莊)은 원래 청나라 왕실의 주방이었다.
자금성의 북해공원(北海公園) 호숫가에 자리하여 경치도 아름다운 이 음식점은 지금은 일반에게도 공개하고 있어 1인당 우리돈 10만원 이하로 웬만한 정찬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1979년 7월에 3일간에 걸쳐 점심과 저녁으로 만한전석의 시범을 보인 적이 있다. 극히 제한적인 인사들만이 초대되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북경의 방선반장(倣膳飯庄)이나 미미진(美味珍), 홍콩의 신동락(新同樂)이나 동해(東海), 미심(美心) 등에서 맛을 볼 수 있지만, 홍콩에서는 현지에 풍부한 해산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흠이라서 오히려 만한전석이라기 보다는 광동요리 모듬 같은 느낌이 들어 꼭 이것을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북경 쪽을 권하고 싶다. 미미진에서는 한끼에 열명 기준으로 우리 돈 1500만원 정도면 맛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중화요리의 대장정이 끝났다.
그러나 중화요리가 훌륭하다고 해서 우리 음식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서로의 문화가 다를 뿐이다. 필자가 항상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서브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손님을 맞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중국 요리에서는 우리의 떡이나 부침개, 죽 같은 것도 훌륭한 요리의 하나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간식거리로 생각할 뿐이다. 문제는 우리 요리의 종류가 적어서가 아니라 서브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더 크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손님을 모시는 방법이 너무 촌스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 다녀온 많은 중국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사람들이 매일같이 불고기에 갈비 또는 삼계탕만 대접하기 때문이다. 제발 좀 성가시더라도 기왕이면 다양한 우리 음식을 접하게 해 드리자. 호박죽으로 입맛을 돋운 다음 삼계탕 한 그릇에 추어탕 한 그릇, 순두부 한 뚝배기, 파전 한 접시, 쑥떡 한 접시, 불고기 한 접시, 생선구이 한 마리, 갓김치 등등을 차례로 내놓고 주식으로는 비빔밥을 차려내 이것을 조금씩 나누어 맛을 보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 조합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아! 이제 머지않아 식욕을 돋우는 가을이 올 것을 생각하니 내가 즐겨 찾던 단골집들이 눈에 선하다. 명일동의 아구찜이며, 삼성동의 추어탕, 중학동의 한정식집, 진동횟집, 곡성의 돼지구이집이며----
이들 또한 우리도 자랑할 수 있는 우리 문화의 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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